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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Feb 10. 2022

생명, 평화, 공존의 길!

杏仁의 길 담화_굽이굽이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듯, 지리산 둘레길은 생명을 품은 길이다. 생명과 평화, 공존이라는 소중한 메시지가 굽이굽이 흐른다. 

 지리산 둘레길은, ‘생명 평화’를 기도하며 길을 나섰던 순례자들의 제안에서 비롯했고, 그 뒤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길, 마을길을 찾아다닌 사람들의 발길로 이어졌다.

 지난 2004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순례단’이 옛것을 보존하고 지역을 살리는 길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 뒤로 지리산 지키기를 자처해온 여러 시민단체가 산림청과 함께 지리산을 두르는 길 찾기를 시작했다. 2007년 창립한 사단법인 '숲길'은, 본격적으로 지리산길 조사·설계·정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2008년 4월 남원 산내마을에서 산청 수철마을을 잇는 71㎞ 구간이 시범적으로 개통됐다.

 이어 2012년 5월, 길을 조성한 지 5년여 만에 드디어 지리산 둘레길 전 구간이 열렸다. 무려 3개도 5개 시·군, 20개 읍면 117개 마을을 이어놓았다. 전북 남원에서 전남 구례, 경남 함양·산청·하동까지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을 이은 길, 2014년 공사를 마친 순환로를 포함하면 장장 22구간 285km에 이른다.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해 트레킹이 가능하도록 환형으로 조성했다.    

  

주천에서 운봉까지 

주천면 내송마을 솔 정자 구룡치 회덕마을 노치마을 덕산저수지 질미재 가장 마을 서어나무숲 행정마을 옛 양묘장 – 운봉읍(14.7km. 5시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구간은, 지리산 서북쪽 능선을 조망하면서 걷는 운봉고원(해발 500m) 너른 들길에서 6개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걷게 된다.

 옛 운봉 현과 남원 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있는 구간이다. 길 따라 걸으며 지리산이 보듬어 온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지리산 둘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이야기들을 듣고 느낄 수 있다.

소나무가 있는 솔 정자, 돌들로 탑을 쌓아놓은 돌탑 ‘사무락 사무락’, 덕산저수지, 서어나무숲이 아름다운 행정마을을 거쳐 운봉읍까지 이어진다. 

 회덕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남 원장으로, 노치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운봉 장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행정리 서어나무 숲    

 남원시 운봉읍 행정(杏亭)리! 이 마을은 300여 년 전 조성된 아늑하고 다정한 정취의 서어나무 숲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 춘향전 촬영 무대이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첫 대상을 차지한 숲 챔피언이기도 하다.

 마을 북쪽에 서어나무로만 이뤄진 전형적인 마을 숲이 조성돼 있다. 숲의 규모는 약 1,600㎡. 제법 굵은 서어나무 100여 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높이가 20m에 육박하는 나무들의 줄기가 마치 남성의 근육질같이 보여서 근육질 나무라고도 불린다. 

 행정리 서어나무 숲이 유명해지고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이 숲이 '아름다운 숲-대상'(2000년)을 타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 촬영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대개의 우리나라 마을 숲들처럼, 이 숲 역시 액운을 막아 마을을 평안하게 할 목적으로 180여 년 전 조성됐다고 한다. 

 이곳에 한두 집씩이 모여들어 마을이 막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마을을 지나던 한 스님이 “들 한가운데는 마을 터로 좋지 못한데 왜 하필 이곳에 터를 잡으려 하는가?”하고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집터를 잡은 마을 주민들은 스님의 말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았고, 스님의 말이 맞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전염병 때문에 죽게 된다. 

 그러던 중 다른 스님 한 분이 마을을 지나다가 알려준 방비책이 숲을 만드는 것이었다. 스님은 “마을 북쪽에 성을 쌓으면 마을의 액운을 막아줄 것”이라면서,  “성을 쌓지 못하면 나무라도 심어 숲을 이루면 마을에 더 이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말대로 나무를 심었고, 이것이 숲을 이루자 더 이상 질병이나 전염병 등으로 죽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제강점기나 6·25 전쟁이 났을 때에도 이 마을 사람 중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니 참 신통한 노릇이다.  

 행정리 서어나무들의 평균 수명이 대략 200년이라는 걸 보면, 한 20년 자란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숲을 조성하려고 큰 나무들을 옮겨 온 것일까? 

 숲 속에서 춘향이가 그네를 타고, 이 모습을 본 이몽룡이 한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된다는 영화 <춘향뎐>의 장면. 이 서어나무 숲에 지금도 영화 속 춘향이가 타던 그네가 있다. 

 행정리는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 지역으로 은행나무의 풍치가 아름다워 은행마을, 은행몰이라고 하다가 한문으로 은행리(銀杏里)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행정리가 됐다. 

행정리는 향토산업마을이자 체험 휴양마을로 지정을 받아 마을 주민들이 향토음식과 농촌 수확, 자연생태, 역사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만드는 콩 유과가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구룡치 가는 숲에는 ‘사무락 다무락’이란 돌무더기 탑이 있다. ‘사무락 다무락’은,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즉 소망을 비는 돌담, 담벼락이란 뜻의 이 지역 말이다. 덕치리 사람들이 주천 장터에 산나물을 팔러 가는 길에, 오늘 많이 팔게 해 달라며 돌 던지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 잘 보살펴 달라고 또 돌 던지며 지나던 길이다.

구룡치에서 올라오는 길과 구룡치 넘어 내려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도랑을 건너 사브작사브작 걷는다,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회덕~내송 간 옛길 10리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 폭도 넉넉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서 솔숲을 즐기며 편안히 걷는 길이 이어진다. 김행인(杏仁길 안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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