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사로 일하며 여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단순하게 발음이 좋지 않아서 찾아오거나 말을 더듬거나 언어발달이 늦어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어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자폐성 있는 아이들은 치료실을 오래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함께 오는 부모님들도 많이 힘들어 하신다. 특히 주변 사람들과 상호작용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든 아이들이다.
언어치료를 처음 시작했던 20년 전에는 이런 아이들에게 행동수정적인 접근을 했었다.
자폐가 있는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 중 일반적인 발달을 하는 아이들이 하지 않는 행동은 소거시켜야 할 행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자폐성 장애 아이들을 더 소극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더 일방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최근에 이런 아이들에게 '반응적인 상호작용'의 관점으로 치료의 방향이 바뀌어 가고 있다.
10여 년부터 배웠던 RT중재(반응적 상호작용)를 통해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도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알려드리고 있다.
적절한 말로 소통이 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은 자폐성 장애 아이들과 함께 상호작용을 하며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하도록 시키지 않는다.
처음에 '아동의 세계로 들어가기'라는 전략을 통해서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 행동을 따라해 본다.
처음에는 옆에 있는 선생님의 이런 태도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이말 저말 시키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따라하는 선생님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스스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나중에는 일부러 어떤 행동들을 하며 선생님이 자기를 따라하나 안 따라하나를 테스트하기도 한다.
자신의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 부모님들은 놀라게 된다.
그러면 엄마에게 바톤을 넘겨서 아이의 옆에서 제가 보여준 것처럼 해보라고 한다.
부모님들도 아이가 언어적인 방법이 아닌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엄마와 상호작용을 하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언어적인 상호작용이 되지 않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치료사의 관점이 아닌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직접 같이 그 행동을 해보면 그 아이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와 함께 의사소통하는 언어치료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런 언어치료를 하는 언어치료사이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맞다 틀리다의 관점이 아닌 '왜 저 행동을 할까?'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다보면 정말 '그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기'가 가능해진다.
그때 아이와의 의사소통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지점부터 상호작용을 시도할 때 아이와 소통이 가능한 언어치료사가 된다.
물론 저도 처음부터 그런 자세를 가진 치료사는 아니었다.
20년 전 초임시절에는 치료사의 입장에서 치료의 목표를 정해서 언어치료를 했던 적이 많았다.
치료사의 넘치는 의욕이 때로는 아이의 의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내가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키워보며 알게된 점이다.
언어치료의 연차가 점점 쌓여갈수록 아이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언어치료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