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9년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가장 찌질했던 해, 가장 마음이 엉망진창이던 해였다. 그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브런치 작가가 된 걸지도?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땐 살기 위해서 글을 썼다. 뭔가 가득 찬 듯 목이 멜 때 글을 토해내고 나면 어느 정도 숨이 쉬어졌다. 몇 년에 걸쳐 숨 막히는 터널을 지나고 나니 이상하게 글이 잘 나오지 않았다. 거친 파도 같던 일상이 잔잔한 일상이 되고 나니 매일이 똑같게 느껴지고 한동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6년이란 시간이 부끄럽게도 그동안 글을 꾸준히 올리지도 않았고, 책을 낸 적도 없고, 작가로서 돈을 번 적도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 계속 쓰고는 있고, 여전히 브런치 작가임엔 변함이 없다. 쉬지 않고 꾸준히 썼으면 뭔가 또 새로운 기회들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껏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6년 만에 처음으로 필명을 바꿨다. 히야라는 필명은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나중에 바꿔야지'하면서 대충 지었던 것이었다. (그 '나중에'가 '6년 후'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지) 사실 6년 내내 필명을 뭘로 바꿀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필명은 독자들에게 혼돈을 주면 안 되니 자주 바꿀 수 없고, 다른 작가들이나 브랜드 네임 같은 것과 겹치면 안 되고, 어느 정도 의미가 있으면서 흔하지는 않아야 하고... 등등 이런 기준들을 세우다 보니 도저히 정할 수가 없었다. 후보로 생각해 둔 필명만 수십 개였다. 이러다 영영 못 바꿀 것 같아 일단 여러 후보 중에 하나 골라 큰 맘먹고 바꿨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뜻은 별 뜻 없다. 그냥 '열심히 놀고 열심히 쓴다'라는 의미에서 '놀쓴'이라고 지었다.
6년 동안 하려고 마음만 먹고 아직까지 못한 것이 또 있다. 바로 '브런치 공모전 도전하기'이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브런치 공모전에 아직까지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다. 도전했다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지금껏 도전 한번 해보지 않았다. 차라리 매년 도전하고 매년 떨어졌으면 느낀 점도 많을 거고 정리해 둔 글이라도 남았을 텐데.. 매년 반성하고 또 매년 목표만 세우고 있다. 물론 올해의 목표도 '브런치 공모전 도전하기'이다. (과연 올해는....?!)
사실 나는 코끼리다.
현재 브런치뿐 아니라, 밀리로드, 블로그, 재능 플랫폼에도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옛날 옛적과 달리 요즘에는 글 쓸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다 보니 어느새 여기저기에 글을 쓰고 있다. 아마 많은 작가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각 플랫폼에서 모두 다른 필명을 쓰고 있다. 브런치에서는 내 긴 코에 대해서 쓰고, 밀리로드에서는 내 우람한 뒷다리에 대해서 쓰고, 블로그에서는 내 팔랑팔랑한 귀에 대해서 쓰는 코끼리 작가다. 각 플랫폼의 독자들은 모두 나의 일부분들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나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이다.
여러 플랫폼이 많아졌어도 여전히 에세이는 브런치에 쓰시는 분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나도 여러 군데에 글을 쓰지만 가장 오래 써서 그런지, 나의 못난 모습도 많이 써서 그런지 브런치에 글 쓰는 게 가장 편하다. 하고 싶은 말은 뭐든 해도 되는 대나무숲 같은 소중한 공간이다.
지인들 중에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지인이 우연히 내 브런치 글들을 모두 읽는다면 아마 나인 줄 알아차리긴 하겠지. 실명도 사진도 공개하지 않고 편하게 얼굴 없는 작가로 글 쓰는 게 좋다. 브런치에는 내 사진이 나온 적 없으므로 나는 철저히 나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 (내 볼따구에 있는 점 하나는 공개해 볼까나)
내 글감 메모장은 마치 옷장 같다.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은 없다. 글감은 많은데 막상 올릴 글은 없다. 늘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메모해 두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들이다. 글을 다듬고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메모를 많이 해두어도 하나의 글을 정리해서 발행하는 데는 최소 몇 시간은 걸린다. 글을 정리해서 쓰다가 보면 내용이 산으로 갈 때도 있다. 내가 써 놓고 '이게 뭔 소리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은 발행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그럴 때는 다시 서랍에 처박아두기도 한다. 가볍게 써놓은 메모들만 가지고도 멋진 글이 그냥 술술 써졌으면 좋겠다는 날로 먹기 심보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자주 읽었던 브런치 작가분들 중에 몇 년 동안 새 글이 올라오지 않는 분들이 많다. 나도 오랫동안 글을 안 쓴 적이 많다. 나는 언제까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을까?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이 있을 순 있어도 나는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브런치가 없어진다면 아마 또 다른 곳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연히 나를 위해서다. 내가 어떤 것들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해하는지, 어떨 때 우울해하는지, 그럴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글을 쓰면서 나에게 맞는 답을 나 스스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 분 한 분 나에게 소중한 독자분들을 위해서다. 아마 처음부터 오랫동안 내 글을 보신 독자분들은 나에게 '글적 친밀감'을 느끼실 거라 생각한다. 나도 오랫동안 읽어온 작가분들에게 그렇게 느끼니까. 글적 친밀감을 느낀 작가분들의 글이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한 분이라도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별거 없는 일상 글들도 쓰게 된다.
심심할 때 가끔씩 나의 예전 글들을 읽는다. 오래전에 썼던 글들 중에는 다시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들도 있고, '오... 나 글 좀 쓰는데?' 하는 글들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내 글들은 하나하나 소중한 내 새끼들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몇 년 뒤 읽으면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해하면서 쓴다. 몇 년 뒤에 무얼 하며 살든 지금처럼 계속 글을 쓰는 삶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