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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ul 02. 2024

난생처음 글쓰기모임을 열어보았다.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 사람들을 좀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여러 플랫폼에서 취미 모임을 뒤적거리다가 그냥 내가 직접 모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모임 주최자라는 부담감은 있지만 그만큼 내 취향에 맞게 모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호하는 조건들로 사람들을 모집했다. 내가 시간이 되는 토요일 낮 격주로, 내가 소수의 만남을 선호하기에 최대 6인까지만, 그리고 참여 가능 조건은 30대 여성이었다. 일단 같은 나이대, 같은 성별인 것만으로도 대화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기도 하고, 또래의 동성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내 사심도 몇 스푼 넣었다.


  모임 주제는 내 취미 중 하나인 '글쓰기모임'이다. 올해 초부턴가 계속 글쓰기 모임을 직접 열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 드디어 일을 저지른 것이다. 혼자 쓰는 글도 맛있지만, 같이 쓰는 글의 맛도 느껴보고 싶었달까.


  막상 모임을 개설하고, 사람들이 모이고, 첫 모임 일정이 잡히고 나니... 갑자기 도망치고 싶어 졌다...!! 안 그래도 하고 싶은 게 많아 벌여놓은 일들도 수습하기 바쁜데 괜히 또 일벌인 거 아닌가? 내가 뭐라고 글쓰기 모임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갑자기 겁이 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날짜를 잡아둔 이상, 냅다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임장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니 무언의 압박감이 생겼다. 모임이 기대도 되면서 은근한 스트레스도 좀 받았다. 모임 소개 글에 나를 브런치 작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써놨으니 내가 말을 잘해야 할 텐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서 모임 가서 할 말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밥 먹으면서도 자기 전에도 자꾸 생각이 났다. 결론은 모임을 어떻게 진행하면서 어떤 말들을 할지에 관한 대본까지 써서 갔다...


  무료로 하는 모임인데도 이 정도니 돈 받고 하는 글쓰기 강좌 같은 걸 열었으면 '참여한 사람들이 돈 아깝다고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꽤 스트레스받았을 것 같다. 처음이니 그냥 무료로 진행하길 잘한 것 같다. 이 이후에도 계속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모임을 직접 진행해 본 경험이 나중에 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무슨 말을 할지 정리를 하고 나니, 이번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 오면 어떡하지? 너무 혼자서만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오면 어떡하지? 갑자기 당일에 못 나온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어떡하지?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데 내가 어버버버 하면 어떡하지? 다들 조용한 사람들이라서 분위기가 적막하면 어떡하지? 반대로 모두 활발한 사람들만 와서 시끌벅적 수다 떠는 모임이 되면 어떡하지? 이렇게 계속 '어떡하지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그리고 역시나 쓸데없는 걱정들이었다. 첫 모임에 다들 시간 맞춰 잘 도착해 주셨고, 다들 돌아가면서 모두가 적절히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내가 진행하는 방식에 잘 따라주셨고, 약간 긴장한 내가 조금 어버버버 하긴 했으나 다행히 심하진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건 이분들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표현 방법을 잘 모를 뿐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글로 토해내는 게 제격이지! 그분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끄집어낼 수 있게 하는 모임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는 분들이셨지만, 내 글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척척 집어주셨다.


  혹시나 다들 말이 없으셔서 시간이 텅텅 남으면 어쩌나 했는데, 아주 풍성하게 꽉꽉 채운 시간이었다. 참여하신 분들도 다들 '시간이 되게 빠르게 지나갔다'라고 하셨다.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다 했는데, 모임 마친 후에 해주시는 말들과 표정을 보니 그래도 나름 다들 만족하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내가 이 모임을 위해 많이 신경 쓰고 준비해 왔다는 걸 느끼신 것 같아 혼자 맘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 한창 여러 모임에 나갔을 때 내가 나갔던 모임들은 꼭 몇 명씩 늦고, 한두 번 진행되면 한두 명씩 빠지기 시작하면서 모임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내 첫 글쓰기 모임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이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드디어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그 시작이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괜찮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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