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는 이제 막 독립해서 혼자 산지 몇 달 안 되었을 때다. 하는 일 하나하나가 다 처음 해보는 거라 별거 아닌 일상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본가에서 살 때는 꿈도 못 꿨던 아침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방에서 눈뜨는 일,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출근하는 일, 클래식을 틀어놓고 혼자 대청소하고 빨래하는 그런 평범한 일들조차 다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작년 이맘때쯤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그때의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요즘은 그때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이젠 익숙해져서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작년 이맘때와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 거의 똑같이 지낸다. 오히려 작년에 하던 것들보다 하는 게 더 늘었다. 작년 이맘때엔 하지 않았던 수영과 스페인어 공부도 지금 하고 있으니.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보려 하긴 했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걸 하니 여유가 좀 없어진 건가 싶기도 하다.
요새 주식시장이 쭉쭉 오르면서 내 계좌도 몇 달 만에 꽤 많이 올랐는데도 아무 감흥도 없다. 어차피 매도해서 수익실현하기 전까진 내 돈도 아니고, 지금 당장 전부 수익실현해서 현금으로 쥐고 있다고 한들 이것 가지고 뭘 할지도 모르겠다. 돈을 쓰는 거야 금방인데, 꼭 써야 할 가치가 있는 일에 쓰자고 하니 막상 쓸만한 데도 없다.
그냥 기분이 막 싱숭생숭해졌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가,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다. 이런 얘길 하면 '그러니까 빨리 결혼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 이렇게 혼자 그냥 글로 푸는 중이다. 저런 얘길 들으면 그냥 한숨만 나온다. 힘들다거나 외롭다거나 한 게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힘듦과 외로움을 결혼이 다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는데 말이다.
그럼 내 상태가 어떤고 하니,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것도 아니다. 하루에 하고 싶은 일을 꽉꽉 채워서 하면서도 일요일 하루는 푹 쉬는 편이다. 불면증 같은 것도 전혀 없고 잠도 꿈도 안 꾸고 푹 잘 잔다.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사람의 행동과는 거리가 좀 먼 거 같다.
아무래도 권태로움과 공허함에 가깝다. 아무리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도 내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내일도 모레도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비슷하겠지, 흰머리와 주름이 더 느는 것 말고는 변하는 게 없겠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잠시 어두운 곳으로 가라앉는다. 내가 원하는 데로 살기 위해 잘해나가고 생각했는데, 내가 원하는 게 뭐였는지도 가끔은 잘 모르겠다.
인생에서 행복은 아주 찰나이고, 대부분이 힘들거나 지루하거나, 이게 반복되는 것 같다. 몇 년간 힘들었다가 아주 잠깐 행복했다가 이젠 지루한 상태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기간만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좀 괜찮아진 거 같다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반차를 내고 경기도권 브런치 카페에 혼자 드라이브 왔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오자마자 숨이 턱 막혀버렸다. 괜히 왔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오후 2시가 넘어가니 사람들이 다 빠져서 지금은 혼자 이렇게 조용하고 여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연차 낼까 말까 또 한참 고민하다 질렀는데 지르길 잘했다. 그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뭔가 기분 전환이 조금 되는 것 같다. 유럽여행 갔을 때 매일 먹었던 브런치를 오랜만에 먹었다. 매일 집에서 밥을 해 먹다가 오랜만에 카페 와서 브런치 먹으니 혼자 여행 온 기분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