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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May 10. 2021

어느 사별자의 소개팅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이구요. 결혼 2년차에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내고 2번째 기일이 지나서야 생애 첫 소개팅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보기에 전 괜찮아보이나 봅니다. 소개팅이라는걸 해보게 될 줄이야.

문득 남편을 떠나보내던 날 장례식장에서의 시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2년만 지나고, 꼭 좋은 사람 만나거라” 라는 말이 그 당시엔 몹쓸짓처럼 들려서 화를 냈었거든요.

세월이 조금은 지나보니 많은 사람들은 이혼이나 사별을 같은 돌싱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참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이혼 후 아이가 있어 전 남편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나 사별 후 기일을 챙기는 것을 동급으로쯤 생각한다는걸 듣고선 생각의 전환이 시작되었던거 같아요.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자신이 행복한 삶을 찾아 가는게 맞는거죠.

그렇지만 아직은 제가 잘 하고 있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늘 그렇듯 오늘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남편이 아닌 제가 먼저 하늘로 떠나갔고, 영혼이 되어 구름처럼 그를 지켜보고 있다면 말이에요. 저는 그가 저때문에 너무 힘들어 세상을 등지고 살거나,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삶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혼자서 잘 살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가  봤을때 그이는 누군가 지켜봐주며 잘한다고, 멋지다고 말을 해줘야할 사람이에요. 지금 잠시 일을 잘 못한다고 해서 네가 능력이 없는것이 아니라고 늘 지지하고 있다고 얘기해주었죠. 코로나가 있기전에 그가 떠나갔다는게 정말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우리 둘은 24시간 항상 있어도 늘 행복했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행복하다고 해서 슬프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가 있는 영혼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다르지만 그도 그 곳에서 잘 있음을 느껴요.

누군가는 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결혼 했을때 행복을 느꼈던 사람들은 또 다시 결혼을 하게 된다고요.

정말 그런가봐요. 아니 그렇다고 합리화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때때로 그가 생각나는 날들이 있어요. 아마도 기일만큼은 영원히 힘들지도 모를 저에게  제 편이 되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미안해요. 떠나간 남편에게도 새로운 모든 인연들에게 그런 감정을 갖고 지냅니다.

사별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면접을 보러 가서는 결혼예정이 있냐는 질문에 저는 사별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기에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어색한 기류속에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 하게 된 이후로 본의아니게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하고 다녀요. 그 단어는 마법처럼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억울했고 거짓말을 특히나 싫어하는 저는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그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사별이라는 단어만 뺀다면 저는 누가 보기에도 잘 살고있는 싱글 여성이었어요. 

사별을 겪고 나서 바뀐 것 중 하나는 인관관계에요. 부부모임으로 자주 만났던 이웃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도 어색한 기류속에 멀어져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이번 소개팅의 주선자에요.

그녀는 멋진 금속공예작가에요. 우리는 당근 마켓에서 거래를 하다가 알게 되었고, 둘 다 고양이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했죠. 둘 다 프리랜서라는 공통점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저는 그녀에게 사별에 대해 말하지 못했어요. 괜히 어색해지는것이 싫었고, 이제는 그 연민의 눈초리를 알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공짜 영화 티켓이 있다며 영화를 보러 만났다가 그녀의 남자친구의 회사 동료가 소개팅을 원한다는걸 알게 되었어요. 그닥 소개팅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저는 ‘이제는 때가 됬나’라는 생각을 하며 사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 남자분에게도 전달이 되었고, 이상하게도 상관 없으니 만나보겠다는 말을 했다는군요.

아무렇지 않은척 전화번호를 교환하고선 연락을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어째서 초혼인 그가 저를 만나보겠다고 하는건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힘든 시간을 잘 보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선 저는 어쩌면 ‘사별자’라는 굴레 아래 스스로 속박하고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가 보고 있다면 잘 했다고 할까요?

그를 겁탈하듯 데려가버린 신을 믿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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