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원래는 전공을 살려서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보려고 했다. 보통 영주권을 받으면 공부하겠다고 IELTS 공부도 하고, IELTS 점수 요구가 낮은 레벨에 들어가 페이퍼 하나도 들어보곤 하는데 그 도전이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조금 과장해서 어떤 동료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인생의 레일을 바꾸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민을 오면 생존하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에 새로운 것을 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
돌아보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데까지 다 받으면서 살았던 우리 가족에게 아내의 공부는 어쩌면 사치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일터로 나가 일을 해야지 무슨 공부인가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주위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우리 인생,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니 믿음으로 아내의 도전을 응원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둘째를 낳고 계속 공부했다. 옹알거리는 둘째를 포대기에 매고 맥도날드에서 공부하고,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유치원 갈 때 즈음에는 학교에 파트로 입학하고 어느 정도 풀타임으로 두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할 만큼 될 때에는 본인도 풀타임으로 공부하고 시험보면서 결국 졸업을 했다.
졸업한 후에 원했던 그림대로 본인이 원하던 직장에 가면 좋으련만, 어떤 회사도 환영하는 이가 없으니 New World 정육 코너에서 첫 직장을 갖고, 그 이후 작은 건설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그리고 Big Chill 물류 운송회사에서 풀타임이 되어 말이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른 키위들과 일을 했다. 간단한 몇 줄의 요약이지만 사실 아내는 울기도 많이 울고 영어가 원어민처럼 되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실망하며 매일 탈진 상태로 집에 왔다.
아내가 New World에서 일할 때 난 아내가 참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나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기 전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해. 그냥 이제 만족하고 거기에 있어.”
“뭘 더 바래,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라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부러워해. 이제 그만하고 거기 있어.”
“회계사가 안 되면 어때, 그냥 거기 있으라니까. 나도 힘들고 애들도 힘들어. 이제 그만하자.”
풀타임 부부에게 있어서 가리는 것 없이 서로 필요하면 밥하고, 필요하면 애들 공부시키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지금까지 왔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서로 위로하기도 많이 했는데 아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니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이런저런 그림이 맞춰지면서 드디어 아내가 본인이 원하고 원하던 Accountant Role을 얻어 Auckland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에 있는 회사에서 Job Offer를 받아 일을 시작한다.
이민 초기에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 되면서 아내가 하는 결정들에 대해 더 이상 딴지를 걸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실 가장으로서 아내의 위로의 말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참 많은 힘이 되었다. 엘림교회에서도 인턴 기간 포함하여 11년 목회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번도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할 수 있다, 남편이니까 가능한 거다. 하나님이 길을 여실 것이다. 포기하지 말자. 안 보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다 우리를 보고 있다. 사람들이 안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신다는 이야기로 나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 아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균형이 이민 온 지금 이제야 점점 현실이 되어간다. 여기까지라고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려가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그저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 하나로 묻히지 않게 더 많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 많은 키위들이 자주 사용하는 아래의 말처럼 우리 가정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며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