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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Sep 17. 2020

경기도식 여름 풋김치와 겨울 묵은지가 어우러진 밥상

* 경기도 여름 풋김치 담그는 현장 사진은 

   카카오 갤러리(https://gallery.v.daum.net/p/premium/hansikculture05)에서 만나실 수 있어요.


여름 김칫거리 중에 가장 흔한 것은 열무다. 텃밭에 한 고랑을 내 열무씨앗을 뿌려 두면 어린 열무가 자란다. 이걸 솎아 무쳐도 먹고 된장국도 끓여먹다가 손바닥 길이만큼 자라면 비로소 뽑아 김치를 담근다. 콩 포기 사이에 뿌려 거둔 콩밭 열무도 초여름 귀한 김칫거리가 된다.   

   

상그러운 열무김치에 과한 양념은 그야말로 과하다. 단맛 든 홍고추 갈아 넣고 새우젓 국물 좀 넣어 버무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푸른색을 살리려면 독 오른 풋고추를 넣어도 좋다. 생것 그대로 먹어도 좋고, 누릿하게 익혀 강된장 넣은 비빔밥 재료로 써도 그만이다.      


열무김치는 밀가루 풀을 후룩하게 쑤어 넣고 담급니다. 열무도 그렇고, 밀가루도 찬 성질이 있어 더운 여름에 먹기 좋지요. 겨울에는 배추가 차니 따뜻한 성질을 가진 찹쌀풀을 넣어 김치를 담그고요.

   

경기도 인천에서 나고 자란 유정임 김치명인이 붉은색 열무김치와 푸른색 열무김치를 각각 내왔다. 붉은색 김치는 홍고추, 양파를 갈아 넣은 것이고, 푸른색 김치는 매운 풋고추를 갈아 넣은 것이라고 했다. 들어간 젓갈은 황석어젓과 새우젓. 오이를 한입 크기로 송송 썰어 살짝 절였다가 빨갛게 무친 오이깍두기에도 황석어젓을 쓴다고.      


잘 삭은 황석어젓을 달여서 창호지에 걸러낸 액젓      


경기도 사람들은 새우젓을 기본으로 잡고 황석어젓이나 조기젓을 보태 김치를 담급니다. 예로부터 황석어와 조기가 연평도에서 많이 잡혔잖아요. 5월이 되면 집집마다 황석어나 조기를 몇 상자씩 사옵니다. 큰 것은 소금을 뿌려서 절인 다음 말려요. 그걸 구워도 먹고, 튀겨도 먹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얹어서 쪄먹기도 했지요. 잔 조기나 황석어는 소금을 넉넉하게 뿌려 젓을 담아요. 알배기가 많아서 잘 삭으면 기름이 동동 뜨는데 살을 찢어서 무치면 밥반찬으로 제격이지요. 칼로 다져서 매운 고추 넣고 무쳐 상추쌈에 얹어 먹어도 좋고요.


충분히 삭은 황석어젓이나 조기젓은 젓갈 양의 두배 정도 되는 물을 붓고 솥에 펄펄 끓인다. 살이 녹고 뼈가 무르도록 끓인 다음 창호지에 거르면 발그스름한 액젓을 얻을 수 있다. 비리지 않고 구수한 맛이 나 담백한 중부식 김치에 두루 쓰인다.       


유정임 명인의 김치 맛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멸치와 다시마, 무, 표고, 마른새우, 마른 홍합 등을 넣어 달인 육수. 역시 맑게 걸러서 배추김치 밑 국물로 쓴다. 간이 세지 않아 슴슴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특징인 경기도식 배추김치 맛의 비결이다.      


경기도식 배추김치는 오래 절이지 않아요. 여름에는 7~8시간, 겨울이라도 12시간이면 충분하지요. 전라도 김치는 만 하루 이상 절여서 수분을 완전히 빼고 담그는 것이 다릅니다. 젓갈도 거르지 않은 멸치진젓이나 갈치진젓을 넣고요.

     

오이지와 무짠지는 한여름 반양식      

유정임 명인의 배추김치에는 재미있는 재료가 두 가지 들어간다. 연근과 말린 오이지. 연근은 김치가 쉬거나 무르는 것을 방지하고 오이지는 오들오들 씹는 맛이 재미있다. 전통 방식으로 오이지를 담그려면 진한 소금물을 달여서 뜨거울 때 붓는다. 유정임 명인은 설탕, 물엿, 고추씨, 소주, 청양고추 등을 넣어 새콤달콤한 오이지를 담근다고. 뒷맛이 칼칼한 것은 청양고추와 고추씨 덕분이다.      


오이지는 얇게 썰어서 시원한 물을 부어 냉국으로 먹거나 꼭 짜서 갖은 양념을 넣어 무쳐 먹으면 여름 반찬으로 더할 나위 없지요. 넉넉하게 만들어서 일부는 꼬들꼬들하게 말렸다가 배추김치에 몇 쪽 박으면 그게 또 별미예요. 예전, 어머니가 꼭 그렇게 담가주셨지요. 김장철에 따로 담근 무짠지도 여름에 꺼내 납작납작 썰어 물을 타서 냉국으로 먹거나 무쳐 먹었어요.     


묵은지 씻어 밥을 싸 먹던 어린 시절      

손맛이 유독 좋았던 어머니의 음식 중에 특히 잊지 못할 음식으로 그이는 묵은지 쌈밥을 꼽았다.    

  

옛날에는 어디 갈 데가 있으면 어머니는 묵은지 한포기 우선 꺼내오라고 시키셨어요. 그걸 씻은 다음 한 잎씩 떼어 참기름으로 버무린 밥을 놓고 둘둘 싸주셨지요. 급할 때는 김밥보다 간편하고 잘 쉬지도 않았으니까.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인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 시간이 없을 때는 아예 묵은지를 송송 썰어서 참기름 넣고 밥에 버무려 한입 거리로 뭉쳐 주셨어요. 출출한 밤에 야식으로도 많이 먹었지요. 네 자매가 조르르 앉아 어머니가 둘둘 말아 싸주는 걸 받아먹곤 했네요.     


묵은지 음식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묵은지찜일 것이다. 유정임 명인은 돼지고기 넣은 묵은지찜도 좋지만 그보다는 토종닭을 토막 쳐 넣고 뭉근하게 끓이는 편을 좋아한다. 그 역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입맛이다. 속을 털어낸 묵은지에 참기름을 둘러 밑간한 다음 냄비 밑바닥에 한 켜 깔고 다진 마늘, 생강, 참기름으로 밑간한 닭도 한 켜 깐다. 반복해서 채운 다음 센 불에서 10분, 중불에서 10분 끓인 다음 푹 무르도록 시간을 더 두어 뜸을 들인다.      


어머니가 닭묵은지찜을 한 냄비 해주시면 딸 넷이 게눈 감추듯 다 먹어버리곤 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 혼자 웃음이 나와요. 너무 맛있었어서.

          



글: 이명아(토속음식연구가)  

사진: 최해성(베이 스튜디오)

영상: 박명화(지구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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