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중국산 김치가 국제표준이 됐다? 물론 엉터리다. 김치 해당 부처인 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는 바로 해명(?) 자료를 내놨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중국의 무리수를 지적하고 나섰다. 중국식 김치 국제표준은, 중국의 지나친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내용은 엉성하고, 주장도 성기다.
[관련기사] 중국 쓰촨김치 국제표준 인가…정부 "김치 아닌 파오차이"
https://www.yna.co.kr/view/AKR20201129029151083?input=1179m
사태의 시작은 중국 정부와 쓰촨성이다. 김치 국제표준 작업에는 그럴듯한 중국 단체가 나섰다. ‘환구시보’다. ‘환구시보’는 중국 관영 매체와 다름없다. ‘환구시보’가 엉터리 주장의 나팔수로 나섰다. 중국 국가가 관리하는 매체이니 중국 정부의 생각과 다를 바 없다. 관영 매체에서 “중국산 김치가 국제표준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황당하고 당황스럽다. 환구시보는 덧붙여 ‘한국의 수치’라는 표현까지 내놨다. 우리나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반론을 내놓고 이런저런 매체들이 보도, 분석, 발표를 거듭했다. 너무 엉터리니 오히려 반론을 제기하기도 힘들다.
다행스러운 면도 있다. 우리 김치의 위상, 소중한 면을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김치, 김장을 가벼이, 허술하게, 무심하게 여겼다. 하찮은 것으로 여기니 중국산 싸구려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받아들였다. 국산과 중국산 싸구려는 심지어 10배의 가격 차이가 난다. 우리는 그저 ‘김치’라는 같은 이름으로 밥상에 내놓았다. 한국에서 소비하는 김치의 상당 부분을 수출하는 중국 측이 김치를 하찮게 여기는 이유다. 어차피 중국에서 제조, 수출하는 한국의 김치다. ‘우리가 국제표준을 선점하자’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용은, 물론, 엉뚱하다. 중국산 파오차이와 한국 김치를 뒤섞었다.
중국 김치 국제표준은 파오차이(Pao cai)다. 파오차이는 포채(泡菜)다. 중국 측이 이야기하는 국제표준 김치의 시작은 쓰촨(四川)성 메이산(眉山)시의 파오차이다. 메이산 시의 시장감독관리국에서 파오차이를 들고 중국 김치 국제표준 작업을 시작했다. 쓰촨의 발효음식 파오차이, 쓰촨 파오차이는 김치가 아니다. 파오차이는 우리의 장아찌나 일본의 츠케모노[漬物]와 비슷한 음식이다. 같은 음식이라고 하지 않고, 비슷하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표현 그대로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파오차이는 서구의 피클이나 일본 츠케모노와 같은 음식이다. 양념액의 배합이나 사용하는 재료의 차이는 있지만 피클, 츠케모노와 닮았다. 신맛이 나는 액체에 채소를 담근다. 신맛, 단맛을 짧은 시간에 채소에 스며들게 한다. 피클이나 츠케모노다.
파오차이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이다.
파오차이/파오차이(泡菜)는 채소류를 염장한 중국의 절임 요리다. 쓰촨 파오차이가 대표적이고 조미 파오차이, 사천 파오차이도 있다. 중국식 채소 절임으로 서양의 피클이나 한국의 장아찌, 일본의 츠케모노 같은 음식이다./쏸차이[酸菜, 중국에서 배추를 발효시켜 시큼하게 만든 김치의 일종]의 일종으로 소금, 산초잎, 고추, 물 등을 넣고 끓여서 식힌 후에 바이간얼주[白乾兒酒]를 넣어 즙을 만든다./여기에 각종 채소를 넣고 밀봉하여 외부 공기와 차단시킨 후에 발효시켜 특유의 맛을 가진 파오차이를 만든다.
파오차이는 우리도 오래전부터 먹었던 음식이다. 중식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차이(榨菜, zhàcài)’도 쓰촨 파오차이의 한 종류다. 신맛을 내니 쏸차이다. 자차이도, 파오차이도 결국 ‘중국 장아찌’의 일종이다. 그뿐이다.
한국 김치는 중국인들이 ‘한국 파오차이’라고 부른다. 김치가 없으니 김치를 모른다. 파오차이나 김치가 모두 채소 발효 식품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한국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여긴다. 파오차이를 들고, ‘김치 국제표준’이라고 우기는 것은 중국인들의 무지 때문이다. 제대로 된 김치를 모르니 김치와 파오차이를 혼동한다.
왜 하필이면 쓰촨 성일까? 매운맛 때문이다. 중국 쓰촨은 매운맛의 본고장이다. 흔히 매운 고추를 ‘사천 고추’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고추다. 중국 내에서도 ‘사천 음식’은 매운맛이 드러나는 음식으로 여긴다. 한국 김치는 맵다, 사천 음식도 맵다. 쓰촨 파오차이를 들고 ‘김치 국제표준’에 앞선 이유다. 쓰촨성의 매운 파오차이가 한국의 매운 김치와 비슷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걸 중국 정부의 대변인이나 다름없는 ‘환구시보’가 들고나왔다. ‘무지’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독은 중국이 처음 시작한 물건”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터무니없는 종주국 행세다. 장독이 중국이 최초로 만든 물건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독은 자연발생적인 물건이다. 어느 나라나 흙을 반죽하여 장독을 굽는다. 중국의 ‘장독 종주국’은 근거도 없다. 그저 중국이 최초, 우리가 퍼트렸다는 주장이다. 문헌도 없고, 사실을 적은 내용도 없다. 설혹, 중국에서 한반도로 장독이 흘러왔다 한들, 의미는 없다. 고추는 남미가 원산지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반도에도 들어왔다. 고추장은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고추장을 만든 것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우리는 고추장에서 찹쌀고추장을 새롭게 만들었다. 우리는 약 고추장도 만들었다. 외래 재료들을 섞고 비비고, 삭혀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 고추가 남미산이라고 고추장을 남미 원산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장독도 마찬가지다.
문화는 늘 흐른다. 중국의 문물이 한반도로 들어온다. 한반도는 한반도 나름대로 그 문화를 변형, 발전시킨다. K-POP은 일본 J-POP이나 서구의 음악을 본떴다. 일본이 먼저 시작한 서구 음악의 변형을 한국이 발전시켰다. 그뿐이다. 오늘날의 한국 K-POP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다. 영화는?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아무도 ‘기생충’의 성공을 미국 할리우드의 성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승리다.
중국, 중국 ‘환구시보’는 이런 맹목적인 국수주의적 발상을 보여준다.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인들도 빼먹은 부분이 있다. 한국 김치의 주재료는 배추와 무다. 배추와 무라는 이름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배추는 백채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백채는 ‘白菜(백채)’다. 중국식 이름이다. 배추, 백채가 중국식이었다고 해서 배추김치가 중국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배추는 백채고, 곧 중국이 시작이라고 우긴다? 말 그대로 코미디다. 배추의 원산지가 중국도 아니다. 중국 역시 다른 나라의 배추를 받아들였다.
무는 더 재미있다. 무는, 얼마 전까지, 무우라고 불렀다. 무는 무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무후는 제갈량을 이른다. 삼국시대 촉나라 승상 제갈량의 정식 명칭이 제갈무후(諸葛武侯)다. 제갈량이 무를 좋아했고, 그래서 무의 이름이 ‘무후채(武后菜)’가 되었다. 제갈무후가 좋아한 채소라는 뜻이다. 무후채가 무후가 되고, 무후가 무우를 거쳐 무가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무로 만든 음식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인가?
장독이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니 김치는 중국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코미디다. 장독을 이야기하기 전에 배추와 무의 유래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덤으로 이야기하자면, 공자와 주나라 문공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국 김치 표준’의 좋은 예가 되겠다. 공자는 오이지를 먹었다. 좋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멘토인 주나라 문공을 따라서 열심히 오이지를 먹었다. 공자나 주나라 문공은 2000~3000년 전 사람들이다. 이때 벌써 오이지를 먹었으니 오히려 공자와 주나라 문공의 고사가 ‘중국 김치 표준’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법하다.
아무리 중국이 파오차이를 들고 ‘김치 국제표준’을 만들더라도 김치찌개와 김치찜, 김치가 들어간 김치만두를 만들지는 못한다. 김치찌개는 100년이 되지 않는 음식이다. 우리 시대의 한식이다.
한반도는 음식의 용광로다. 모든 외국의 식재료, 음식을 변화, 발전시킨다. 섞고, 비비고 삭힌다.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 한식이다. 햄, 소시지, 베이컨을 넣고 부대찌개를 끓인다. 서구의 식재료지만 부대찌개가 되면서 한식이 되었다. 여기도 역시 김치를 넣는다. 중국 파오차이를 넣고 끓이는 부대찌개는 없다. 한식이다.
김치는 음식의 용광로에 넣고,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변화, 발전시킨 음식이다. 알량한 중국 파오차이는 우습다. 김치는 넓고, 깊다.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올린 한식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용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한국음식문화 누리집(www.kculture.or.kr/main/hansikcultur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