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행복을 느끼는가
요 며칠 진료실에서의 화두는 성공과 행복이었다. (신기하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오는 분들이 많다.)
20대 중반 청년의 고민은 어디까지가 성공한 삶이고,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 주변의 너무도 잘 나가는 지인들과 비교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른다.
나도 지금 생각하는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관한 여러 연구에서 제시되는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더 이상 소득이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의 안정, 사회적 관계, 직업에서 얻는 보람 등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백화점에 가서 사고 싶던 브랜드의 꽤 값비싼 바지를 사며 기쁨에 들떴던 것이다. 그 후로 한동안 바지를 입으며 흐뭇해했지만, 이후 같은 브랜드의 바지를 사면서 그때와 같은 희열을 느끼지는 못했다. 더 이상 고가의 소비가 주는 즐거움이 줄어든 것이다. 오늘은 ‘역시 겨울엔 기모에 밴딩 팬츠지’하며 19000원짜리 바지를 구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직업적 만족감을 얻으며 살아가고, 가족,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들을 이어가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더 큰돈을 벌고, 더 큰집에 살고, 더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오랜 환자 한분이 수줍게 선물을 내밀었다. 텀블러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데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는 자신의 마음과 그것을 온전히 담아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선생님이 떠올라 가져왔다고 하며, 선생님은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 앞으로 행복을 어떻게 지속하게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때의 대답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 감탄과 감사를 표현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큰 행복이나 물질이 주는 행복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일상생활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아이와 아침에 집을 나서며 하는 대화의 시작이 그런 소소한 기쁨들에 대한 것이다. 비에 젖은 나무 내음에 깊은숨을 들이쉬며 냄새 좋다고 말해보기도 하고, 단풍을 보며 매일 변화하는 풍경을 주는 것에 감사하고, 귀여운 길고양이를 만나면 오늘은 운이 좋다고 함께 행복해한다.
당시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꽤 크게 행복을 느낄 때는 내 일에서의 만족감, 보람을 느낄 때이다. 큰 도움이 되었다고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할 때, 나를 믿고 고작 20분 남짓의 진료를 보기 위해 3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와 내원해 줄 때, 정말 힘들겠다 싶은 환자가 오랜 치료 끝에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진료실을 나설 때 등등. 그냥 보통의 정신과의사이지만 진심으로 연결되고 믿어주고 환자들의 변화가 보여질때의 기쁨은 정말 크다.
벌써 성공과 행복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고, 쑥스러울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진료실에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해보고 싶어 하는 것이 참 기특하다. 나의 바람은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이룬 후에는 돈을 좇기보다는 직업적 만족, 안정된 가족, 관계, 소소한 생활의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