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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Mar 07. 2024

출연료 1만 원, 고마운 사람들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우리 회사의 출연료 소문은 업계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가장 먼저 소문이 난 건 시사평론계였을 것 같다. 일단 시사 방송 자체가 없어졌고, 그나마 유지되던 코너의 평론가 출연료도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던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출연한 시사평론가 분들은 상황 다 안다면서 우리가 더는 안 되겠다 할 때까지 출연했다. 이미 교통비를 따지면 마이너스였지만 의리로 나온 거다.


하루는 작가가 없어 급히 준비된 원고를 녹음 스튜디오에 가져갔다. 그런데 원고 내용이 시의성도 떨어졌다. 방송이 나갈 때를 기준으로 봤을 때 꼭 다뤄야 할 ‘핫’ 한 내용이 없었다. 당시 원고를 쓴 PD는 기계처럼 하루에 4~5개의 원고를 쓰며 거의 책을 쓰다시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보수 패널의 강원도 출신 평론가께서 “아무리 그래도 선수가 아무 데서나 뛸 수 없지”라며 시간이 얼마 걸리든 기다릴 테니 원고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나는 그 요청이 좋았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냥 적당히 돈 받은 만큼만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굳이 기다리면서까지 그런 요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를 받든 제대로 된 평론을 하겠다.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기에 그분은 수고로움을 감수한 것이다. 나는 출연료는 적게 받더라도 방송만큼은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분께 감사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려운 시국이지만 KBS에서 오래도록 DJ를 맡고 계신 가수이자 국민 MC인 분을 신년특집으로 모시고 싶었다. 아는 분을 통해 연락처를 받고, 조심스럽게 출연을 부탁드리자 흔쾌히 나오시겠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출연료는 없다고 하자 그분은 웃으며

“다 알고 있습니다. 허허”

하셨다.      


생방송 날, 오랜 DJ 생활 경험담과 신곡까지 다 털어놓으시고 마지막까지 좋은 날이 올 거라며 제작진을 격려하셨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셨는데 잠긴 줄 알았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그러자 그분 웃으며 하시는 말씀

“제 출연료 1억은 언제쯤?”

하시더니 사라지셨다.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보수성향의 개그맨이지만 1시간 내내 코너의 콘셉트에 충실하게 소리치다 가시는 개그맨도 고마운 분이다. 본인도 어려워 봐서 어려운 사람은 차마 내치지 못하는 착한 분이라는 알게 됐다.      


다른 누구보다, 하루 2만 원을 받고 마이크 앞을 지키는 진행자를 보며

모든 사람이 돈만 좇아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잘 나갈 때 도와준 사람은 잊을 수 있어도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은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인생을 사는 내내

그 모습들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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