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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Mar 25. 2024

확장되는 질문, 커지는 의문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변명의 여지없이 경영자로서 무력했습니다”      


3월 15일, 직원들 지지부진한 이야기만 오가던 대표가 글을 올리고 결국 사퇴를 알렸다. 혹자는 '고생을 너무 안 해 본 사람이라 이런 난국을 헤쳐나갈 그릇은 안 되는 것 같더라'라고 했고, 혹자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결과는 사퇴였다. 이제 대표는 다시 공석이 됐다. 배는 가라앉고 있는데 선장이 없어졌다. 누가 되더라도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직원들의 월급을 줄 수 없는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경영전략본부장의 글이 올라왔다.      


“6월 이후 회생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합니다”

6월부터 급여를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6월부터 급여를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숫자를 줄여야 하는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먼저 배에서 내리시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는 다들 예상하던 일이었지만 공식적인 글로 공지 올라온 것은 처음이었다. 직원들은 동요했다.  다가오는 현실을 마주할수록 나의 의문은 계속 커졌다.      


-정말 이 조직은 미래 가치를 논할 자격도 없이 없어져야 하는 조직인가?

-34년 동안 서울시 산하 방송국으로서 쌓아온 제작 역량을 이렇게 버리는 것이 서울시에 어떤 이득인가?

-직원 300명, 일가족 1000명의 생계를 하루아침에 이렇게 없애는 것이 정치인가?

-국민의 생계 이토록 가볍다면 정치의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방송국이 정치집단만의 결정에 따라 이렇게 사라지는 구조는 문제가 없는가?

-2~3년 전 문제가 됐던 이들은 다 떠나고 성실하게 일한 직원들만 남았는데 왜 직원들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는가? 우리의 생존권은 이토록 가볍단 말인가?      


언젠가 작은 소책자로 인쇄된 ‘대한민국 헌법’ 책을 서점에서 사서 읽으면서 감동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이 이토록 아름다웠다니. 그곳엔 꿈같은 문장들이 적혀있었다.      


헌법 제2장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2장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나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글자는 읽고 본질은 해석할 수 있다. 헌법대로라면 나에게도, 동료들에게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사회적 집단에 의해 차별의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인 파괴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비판한 과거의 방송에 그 어떤 것도 권한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의사 결정을 하지도 않았다. 문제가 됐던 인물과 대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직도 회사와 관련된 댓글엔 ”그러니까 진작에 잘하지 그랬나. 000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그래라 “라는 내용이 올라온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곳의 일반 직원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지 적고 싶을 때가 있었다.


우리는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무슨 근거로 우리의 행복추구권과 생존권을 이토록 무시한단 말인가.      


지난밤, 다시 한번 노란 대한민국 헌법 책을 뒤적이면서 지금 내가 이상한 것인가? 이 상황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상황인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연이은 질문과 고뇌에 요즘 잠 못 드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두운 밤이 더 길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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