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 준비하는 여대생 참고사항
졸업 후 언론고시를 시작한 지 2년 차가 되어가면서 불안해졌다. 그래서 눈을 낮춰 일단 일을 시작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기회를 모색하기로 하고 소규모 언론사에 입사지원 했다.
첫 번째 면접시험을 본 곳은 여의도의 모 신문사였다. 자기소개서를 내자 직접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엥? 필기시험도 없이?’ 가보니 대표가 직접 인터뷰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모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사무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합성 같다.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보여줄 게 있다면서 앨범을 꺼냈다. 여기서 일하던 정치부 기자인데 해외 출장이 있을 때마다 같이 다녔다고 했다. 미인이었다. 처음 몇 장은 낯익은 정치인, 기업인이 보였고, 그 옆에 대표와 그녀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뒤로 넘어갈수록 이상했다.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그녀, 바닷가를 걷고 있는 그녀, 가슴이 파인 블라우스에 다리가 드러나는 치마를 입고, 공원에 누운 듯 앉아 있는 그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자 대표의 눈이 추억 속에 빠져 우수에 차 있었다. 뭐지... 서둘러 적막을 깨고 또렷하게 물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신가요?”
“어? 아니. 지금은 그만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하더라고.”
그가 말을 이었다.
“여기 일이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만나는 사람이 많거든.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우리 신문사에서 그렇게 메이저로 간 친구들이 많아요. 내가 여기 다니면서 대학원 다닌다고 해도 다 이해해 준다고. 조금 학력이 딸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학력 세탁도 되고”
일단 듣고 있었다. 나의 반응을 보던 사장이
“근데 시작하면 해외 출장이 좀 있어. 그때는 나를 보조를 해야 하는데. 둘이 가게 될 거야. 뭐 어때? 외국도 나가고 좋지”
...
“얼마나 길게요?”
“2박 3일이 될 수도 있고, 4박 5일이 될 수 도 있고. 뭐 긴장하지 말라고. 방은 따로 쓰니까. 허허허 허.”
음,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죄송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서 제가 먼저 사양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뒤돌아 나온 뒤 이틀 뒤 다른 언론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은 편집국장이 인터뷰를 했다. 사람을 뽑는 모양이 전보다는 그럴싸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편집국장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이곳 업무를 더 설명해 줄 필요가 있으니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사무실에 찾아뵙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여기 일이 좀 긴히 말할 게 많다면서 한사코 카페에서 따로 만나야 한다고 그랬다. 답을 하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아... 다른 게 아니고, 지방 출장 가서 몇 박 할 일이 많은데 그때 둘이서만 갈 일이 있을 거라서...”
뭐 이렇게 똑같은 패턴인가.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말한 뒤,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그 일을 하기가 저는 어려울 것 같다고. 그러자 몇 시간 뒤, 남자친구가 있느냐, 이력서에 보니까 방학 때 해외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던데 외국에 남자친구가 있는 거 아니냐고. 요즘은 좀 만 반반하면 다 외국에 남자친구 있더라... 등등의 문자가 연이어 왔다. 이런 식으로 언론사 취업에 절실한 여대생을 얼마나 농락했을까? 분노를 느꼈다. 답했다.
“00 국장님은 따님이 없으신 가 봅니다. 보내신 문자는 삭제하지 않고 잘 보관하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를 하든지 언론사 선배님들께 대처방법을 여쭤보죠.”
한 시간쯤 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문자 내용은 삭제를 부탁드립니다. 꼭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라요.’라는 문자가 왔다. 웃겼다.
라디오 pd가 되고 싶어 방송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공부하던 내 친구는 유부남 라디오 pd가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술을 마시면 술을 마셨다고 거는 전화와 문자에 노이로제에 걸렸었다. 그가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 신청곡을 보내달라는 말에 친구가 보낸 노래 제목은 ‘2NE1의 넌 정말 재수 없어’. 친구는 지금 돈 더 많이 벌고 잘 산다.
기자가 되고 싶어 경제 관련 월간지에서 일하던 후배는 회식 후 기어코 데려다주겠다는 부장님의 차에 탔는데 술 취한 그는 후배의 집 앞에서 처신을 잘못했고, 마침 딸을 데리러 나온 아버지에게 목격 돼 후배 아버지에게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사죄해야 했다. 나중에 그는 한 배를 타면 면죄부를 얻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후배에게 더 큰 언론사의 부장을 소개해주는 자리를 만들었지만 후배는 나가지 않고, 그만뒀다. 그리고 더 좋은 언론사에 정직하게 재취업했다.
냄새가 난다. 더러운 냄새가. 내 주변 사람만 해도 이런데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겪으며 살아갈까. 아직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우려스럽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후배가 있다면 말하고 싶다. 그런 일을 겪는다면 당황하지 말고, 증거를 남겨라. 그리고 꼭 제대로 사과를 받으라. 그런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여성 언론인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가장 먼저 부딪혀야 할 관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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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노트북에서 예전에 써 둔 이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맞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서 네 지난 경험을 떠올려보니 불쾌함이 아닌 심각성이 느껴진다.
부디 언론계, 방송계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꾸는 여 후배들이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