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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08. 2023

나의 수영 일지

1. 늘 안전이 확보된 구역에 머물러라

지난 한 주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영장을 갔다. 우리 아이들이 워낙 물을 좋아해 내린 결정이었다. 연휴 내내 수영장에서 있다 보니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남편에게 꽤 수영을 배우게 됐다.

사실 아주 얄팍한 기본기는 있었다. 결혼 전 집 근처 체육센터에서 킥 판을 잡고 발로 차며 앞으로 나가는 단계까지는 배웠었다. 그런데 막상 1.5m에서 1.9m로 깊어지는 수영장 레일에 서보니 겁이 났다. 하지만 성인 수영 구역에서 구명조끼는 금지돼서 입을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나가는 연습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킥, 킥, 킥, 킥’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상태에서 속으로 킥을 외치며 다리만 차도 제법 앞으로 나갔다.
남편과 나는 유아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교대로 놀아주며 성인 수영구역을 오갔는데 시간이 돼 남편과 바통 터치를 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가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휴가에 자유형을 배우고 싶다고.

그러자 남편의 반응이 사뭇 진지했다. 왕년에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던 남편은  

“그럼 일단 여기 벽을 잡고 팔을 바꾸는 훈련부터 해야 해. 이렇게 오른팔, 왼팔을 바꿔서 물살을 미는 동작을 반복해. 그런데 양쪽 어깨는 항상 이 위치를 유지해야 해”

라며 과제를 남기고 성인 수영구역으로 떠났다.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자유롭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상태를 틈틈이 확인하며 팔 동작을 연습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왼쪽 팔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이 비대칭이니 움직임도 균형이 맞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 모드가 돼서 돌아온 남편이 내 오른손에 비해 왼손이 돌아가는 각도가 낮고, 팔이 돌아가는 속도도 느리다는 지적을 했다. 그렇게 되면 몸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다시 성인구역에서 해보니 정말 남편의 말대로 왼쪽으로 몸이 기울더니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새삼 내 몸의 균형이 맞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일단 왼손을 오른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쓰기도 하고, 아이를 앉을 때 오른쪽으로만 안다 보니 어느새 골반의 위치부터 팔이 올라가는 각도까지 몸이 비틀어진 것이다.

새도 좌우 균형이 맞지 않으면 날지 못하고,
사람도 균형이 안 맞으면 수영이 안 되는구나.

다시 한번 몸 관리의 필요성을 각성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틀차, 철학적 사고를 하며 팔 동작을 반복을 거듭하니 왼쪽 팔도 오른팔과 거의 같은 각도로 들어 올리게 됐다. 그리고 물속에서 손바닥으로 물을 밀어내니 수영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나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킥, 킥, 킥, 킥’

하던 대로 숨이 찰 즈음에 멈추어 섰다가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숨이 차서 다리를 바닥에 딛으려고 내린 순간, 아뿔싸!
발이 바닥에 닿질 않았다. 수영 속도가 빨라져서 어느새 1.5m에서 1.9m 지점까지 와버린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수심이 낮은 구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틀어 발차기를 해봤다. 하지만 당황한 나의 팔은 그저 허우적댈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몸이 가라앉아 발이 땅에 닿을 즈음, 숨이 더 차올랐다.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났다.

‘이렇게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거구나’

‘물 밖에 일단 고개를 빼고,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지르자’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나는 최대한 세게 바닥을 밀쳤다. 그렇게 잠시 머리가 물 밖에 나간 순간 크게 외쳤다.

여보!”

‘내 외침을 들었을까...’

나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다 물안경 너머 벽 쪽이 보였다. 수영장 벽면에 손잡이 부분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바닥이 다시 발에 닿았을 때 벽 쪽으로 최대한 걸었다. 그리고 손을 위로 최대한 뻗었더니 벽에 있는 손잡이가 잡혔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내 몸을 끌어올렸다.

“허헉”

드디어 숨을 쉬는 순간이었다. 그때 저 멀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내 몸을 누군가 세게 들어 올리는 힘을 느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내가 아직 물에 빠진 상태인 줄 알고 날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했는지 물 위로 얼굴을 들었고, 내가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갑자기 아빠가 뛰쳐나가서 놀란 아이들이 저 멀리서 울고 있었다.

남편은 내 상태를 확인하고,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급하게 다시 돌아갔다.

“그래서 손잡이가 있는 벽 쪽에 붙어서 수영을 해야 돼. 아니면 레일 쪽으로 붙던지"


남편이 내게 단속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도 많이 놀랐던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만약에 봤다면 더 놀랐을 것 같다.

“알겠어. 근데 나 숨쉬기부터 알려줘”

갑자기 물이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고 싶진 않았다. 나는 더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다.

“오호 그래?”

남편의 눈빛이 놀라움 반 의욕 반으로 반짝였다.


기대하시라.
자연스럽게 숨을 쉬며 자유형으로 1.9m 지점을 찍고 돌아오는 나의 멋진 모습을.

이번 여름 나의 수영 도전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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