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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Aug 22. 2023

무의식 정화 열차에 오르다

한 달간의 민박청소를 마치며

한 달 정도 강원도 바닷가 마을 민박집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도와 민박 청소를 했다. 지내던 곳에서 혼자 휴식하며 성대결절 치유에만 힘쓰려고 했는데 어쩐지 가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한 달째 한약을 먹었지만 특별한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한의원에서 세 달간 먹으라고 했는데 내심 한 달 동안에도 차도가 있길 바랐기 때문에 조금은 실망했다. 조금만 말을 평소보다 10분 정도 이상 하게 되면 어김없이 목에 통증이 찾아왔다. 목에서는 상처 난 곳에 모래를 뿌리고 긁어내는 느낌이 난다. 다행히 말을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큰소리를 낼 수도 있지만 더 결절이 심해질까 봐 최근 큰소리를 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기질이 변했다. 자극 추구가 높아 활동적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에 관심이 높았는데 지금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고 특히 자연을 산책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도 혼자만 지내다 보면 우울해질 수 있으니 목을 많이 쓰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라도 가라는 조언을 듣고 글을 쓸 때는 카페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업하고 있다. 확실히 집에서 혼자 작업할 때보다 아늑하고 탁 트인 공간, 너무 시끄럽진 않지만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집중이 더 잘되고 활력이 생긴다. 


 한 달간의 기간 동안 민박손님을 받고 청소를 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많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30대에 제대로 된 직장 없이 돈도 못 벌고, 성대결절에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어렵고, 연애는 망하고, 그 후유증으로 몇 달을 울며 고생하고, 이마에는 생전 나지도 않던 두드러기가 나고 이런 나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랑이 뭔가, 쓸모없다고 손가락질받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언니마저 욱해서 그 나이에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마음에 화살을 꽂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집 가는 버스에서 눈물이 났다. 


 집에 도착하고 며칠은 방청소에 집중했다. 엄마는 일하느라 바빠서 주로 아빠와 함께 민박 청소와 집안일을 했다. 몇 년 전 암에 걸리시고 일을 그만두고 난 뒤로 아빠는 요리를 시작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도 호박장국, 감자전, 오이무침 등 요리를 해주셨다. 나 또한 고생한 아빠를 위해 삼계탕도 끓이고 미역국, 계란말이, 된장찌개 등 요리를 했다. 새삼 내가 어릴 때 집안일, 민박청소, 요리, 바깥일까지 전부 혼자 도맡아 하셨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올여름 내가 도와줘서 엄마가 한 시름 놓았다며 고맙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떻게 혼자 다했는지 모르겠다고 정신없이 세월이 지나갔다고 했다. 이제는 점점 힘이 빠진다고 말하는 엄마가 정말로 예전과 다르게 체력이 부쩍 낮아지고 기운이 없는 모습에 걱정됐다. 엄마, 아빠 언제까지고 살아계실 것 같은데 점점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용돈도 넉넉히 드리지 못하는 못난 딸이라 죄송스럽기만 하다.

아빠가 놓고 간 감자전과 따듯한 물

 엄마, 아빠도 나를 걱정하긴 하시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빠는 방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내게 감자전을 놓고 가셨다. 무심한 듯 표현은 잘하지 않는 아빠지만 그것이 애정 표현이라는 걸 느꼈다. 일을 하고 돌아온 오빠는 가끔 치킨을 사주고 과자를 사다 줬다. 언니는 전에 상처 주는 말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믿고 응원해 주었다. 엄마는 한 달간 더운데 고생했다고 내게 수고비를 주셨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다른 어떤 곳에서 일해서 받은 돈보다 값지고 귀하게 느껴졌다. 이 돈을 거름 삼아 새로운 공간에서 힘내서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경험하고 부딪치기로 결심했다. 


 우리 가족은 말로 하는 표현이 참 서툴다. 나 또한 그렇다. 왠지 낯간지럽게 느껴지고 어색해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서툴고 어색하지만 먼저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고마워." "죄송해요, 미안해요." 나중에는 아주 가끔씩 사랑한다는 말까지 하게 됐다. 내게는 정말 큰 변화다. 처음엔 어렵지만 점점 입에 붙도록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가족들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짜증이나 미움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부정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서툴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표현이 거칠었기 때문에 말로 인한 상처가 컸다. 나는 상처받거나 주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극도로 두려웠기에 착한 아이콤플렉스가 생겼다. 부정적인 감정은 꾹 억누르게 된 것이다. 그랬던 내가 짜증이 나면 짜증을 표현하고 화가 나면 이런 점이 화가 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부족하고 무능한 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 상태가 된 나는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다. 어김없이 현실은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거울처럼 비춰준 것이다. 부모님이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대로 내게도 그 관념과 감정들이 그대로 흡수되었다. 좋든 실든 무의식에 모두 저장되었다. 보이지 않는 장소에 머물면서 상처라고 여기며 들여다보지 않고 느끼려 하지 않았던 감정이 내게 모습을 드러낸다. 한 달간은 가족들에 대한 마음을 다시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두려워했던 마음은 진짜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있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는 것도. 그게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고치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 무의식 속 내면아이를 피하지 않고 만나서 너무 아파서 억눌러 놓았던 아픈 감정들을 치유하는 길. 


 그전까지 불교, 심리학, 철학, 영성, 끌어당김 등 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 공부를 해왔지만 이제야 무의식 정화 열차에 제대로 올라탄 느낌이 든다. 중요한 것은 직접 경험하고 하나씩 행동하며 느끼고 해결해 나가는 데 있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걱정도 조금 되지만 나쁜 마음이 없다는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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