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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Sep 11. 2023

오페라의 유령, 팬텀에게

팬텀을 떠올리며 그린 오페라의 유령 팬텀 책갈피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만난 건 10대 때였다. 

무섭지만 새벽이 되도록 책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그 당시 내게 오페라의 유령, 팬텀은 ‘악’이었다.

크리스틴과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라울을 죽이려 하는 무서운 유령.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지만 두려운 존재였다.     


 이후에 몇 년이 흘러 다시 읽은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의 깊은 고독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꿈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만났고 깨자마자 글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오페라로 제작되었는데 노래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 애달프다.     


 사랑스러운 곡 think of me, 라울과 믿음이 담긴 마음을 주고받는 all I ask of you,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장 유명한 타이틀 곡으로 팬텀과 크리스틴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담긴 the phantom of the opera 등 다양한 곡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the music of the night 이란 곡이다. 

희망을 담고 있는 가사인 듯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끔찍한 외모로 인해 숨어서 음악을 만들 수밖에 없는 팬텀의 고독이 뚝뚝 묻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두근거리면서도 애틋하고 슬픈 느낌이 든다. 이 음악을 들으면 크리스틴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팬텀에게 이끌려 갈 것만 같다.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입맞춤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 이후에 팬텀이 크리스틴과 라울을 풀어주며 떠나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느낀 것이 연민이든 사랑이든 (연민도 사랑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크리스틴의 행동은 팬텀에게 의도치 않게 자신을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음악의 천사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자신의 진짜 모습. 팬텀이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팬텀은 자신의 민낯을 보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틴에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자신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끔찍한 존재라고 느낀다는 것을.      


 크리스틴의 말처럼, 일그러진 건 그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의 외모가 아닌 아픈 마음이 스스로를 가둔 것이었다. 자신을 오랜 기간 어둠 속에 가둔 존재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지 모른다. 그가 내면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음악을 했다면 어땠을까.      


 지난날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러지 못했다. 인정과 애정을 위해 건강과 내면의 욕구는 깡그리 무시했었다. 버림받는 두려움은 마주하기 쉬운 감정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가면을 벗고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외로운 아이(나)를 만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크리스틴처럼 팬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를 가혹하게 가두었던 나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었다.      

 팬텀의 곁에 잠시 서서 그의 노래를 들어본다. 그의 지독한 고독을 느껴본다. 그에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미를 선물하고 싶다. 그를 끌어안고 눈물이 강이 되도록 울고 싶다.      


음악 속에 영원히 남은 팬텀, 안녕. 안녕히.          


*곡 추천 the music of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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