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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랑 Jan 13. 2024

법륜스님 즉문즉설 현장 후기

삶과 죽음에 대해

서울에서 진행된 법륜스님 즉문즉설 강연에 현장 참여를 했다. 유튜브로 도움 되는 지혜의 말씀들을 자주 듣곤 했다. 어떤 질문도 가볍고 명쾌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일깨워주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으면 내가 가진 고민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금요일 저녁 강연이었고, 6명의 질문자가 질문했다. 


보통 1시간 반이면 끝이 나는데 2시간을 가득 채웠다. 시간 관계상 아쉽게 현장 질문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깊이 있는 답변들이 많았다. 이번 회차에는 유독 자식문제로 고민을 털어놓는 참여자가 많았다. 아이의 입장이 아닌 어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아이가 받을 상처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스님은 따끔한 회초리를 휘두르셨다. 


 자기가 낳은 자식이니 자신을 닮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셨다. 자신이 잘 살아왔듯이 아이도 그럴 것이라 믿어주라고 하셨다. 

 "제가 너무 힘들게 살아서.. 저처럼 안 살았으면 해서요."

 "아이고, 그런 일은 없어요. 엄마처럼 안 살아야지. 아이가 그리 마음먹어도 꼭 엄마처럼 되지."

보고 배운 대로 아이는 자란다. 아이는 3살 이전 자신이 자란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성격 등 많은 부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안정감과 충분한 애착을 받지 못한 채 자라면 성인이 되어서 평생을 애정결핍 등 여러 문제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도 자기도 그 나이 돼서 법륜스님 찾아와서 즉문즉설 듣는 것처럼, 자기 자식도 그럴 거예요. 지지고 볶고 살다가 괴로우면 법륜스님 즉문즉설 들으러 오겠지." 질문자와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의 역할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한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의 정서는 따듯한 엄마의 품에서 건강하고 안정감 있게 자라난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밭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기 때문에 먹여주시고 입혀주셨지만 따듯한 품을 느끼진 못하며 자란 것 같다. 스님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것이 다가 아니고 아이에게 따듯한 품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고생하며 먹여주시고 키워주신 것에 대해서 나 또한 감사하지만 어린 시절 결핍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애인을 사귀게 되면 의지하는 마음이 커지곤 했다. 특히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았고 포옹하는 것이 그렇게 따듯하고 포근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안고 있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어린 시절 너무 그리웠던 부모님의 품을 애인을 통해 느꼈던 것 같다. 이별은 마치 깊게 연결된 나의 일부가 된 끈이 끊어지듯 받아들이기 힘들고 마치 얼음송곳이 가슴을 찌르듯 아픔이 컸다. 최근의 이별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며 내 안의 결핍을 더 깊이 마주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아니고 어른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되뇌며 수행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결핍이 있더라도 생긴 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그래, 나는 어린 시절 외롭게 부족하게 자랐지만 이게 지금의 나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남이 어떻게 살아가든 자기 치료, 자기 수행에 초점을 두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활동을 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질문자 분은 죽음에 대해 질문했다. 질문자는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데 때문에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하지만 스님은 그 경험을 트라우마가 아닌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여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네. 죽음이란 게 간단하구나." 

세상에 죽을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죽을 수 있다. 삶과 늘 붙어있는 것이 죽음이다.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때문에 승진하면 좋지만 승진에 목 멜필요가 없다. 결혼하면 좋지만 결혼에 목 멜 필요가 없다. 자식이 잘 되면 좋지만 자식에 목맬 필요가 없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괴로울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기면 두려울 게 없지. 뭐가 두렵겠어. 어떤 일이 있어도 눈하나 깜짝 안 해야지."

미소를 띤 채 가볍게 말씀하시는 스님의 답변에 청중들의 마음도 가뿐해지는 분위기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정말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 같다.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고 말이다. 어쩌다 삶이 이토록 버겁고 괴로움을 주게 된 걸까. 사실 삶은 아무 문제가 없이 존재하는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지가 중요한 것 같다. 죽음이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어제까지도 함께 했던 이의 죽음을 마주한 사건을 겪는 사람들은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180도 변화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면 좋겠지만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때때로 지독한 외로움 또한 느낀다. 또 어찌 살아가나 막막함도 마주하지만 이런 삶을 사랑한다. 아파도 다시 사랑할 기회를 얻는다면 나는 다시 그렇게 하고 싶다. 몇 번이고 말이다. 삶이 보여주는 모든 풍경과 표정이 소중하다. 그것에 대한 나의 모든 반응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죽음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99일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일상일지라도 어느 날 떠오른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은 삶이 주는 선물이자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매일 똑같은 길을 무표정하게 홀로 산책하는 할아버지가 어느 날 이웃 손녀를 만나 인연을 맺는 순간, 이후에 할아버지의 삶엔 손녀가 자리하고 손녀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 순간들이 삶 속에 반짝이는 보석처럼 찾아오기도 하는 것처럼.


 이런 순간들은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순간을 만나왔고 그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어제오늘 울었다고 해도 내일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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