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숨은 아이가 있다

아이를 대할 때 깨어나는 ‘과거 감정 시스템’의 작동 원리

by 김성곤 교수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뒤 문을 닫고 나면 집 안에 이상한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그 정적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왜 저렇게까지 말했지…?”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을 왜 또 아이에게 하고 있지…”


나는 분명, “나는 우리 엄마처럼 안 할 거야”, “내 아이만큼은 상처 주지 않을 거야”라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하죠.

“애가 나를 돌아버리게 하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저는 그 반응의 출발점이 ‘아이’가 아니라, 늘 우리 안에서 기다리던 오래된 나라는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아이 때문에 화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 때문이었다”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교수님, 저 진짜 노력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되면 제 감정이 저를 확 넘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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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엄마는 육아서를 100권 넘게 읽고,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숙제를 미루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날이면 갑자기 이렇게 터집니다.

“너 그렇게 해서 뭐가 되려고 그래? 엄마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왜 그래!”


말을 쏟아낸 뒤, 엄마는 부엌에서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이 말… 내가 어릴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인데…”


또 다른 엄마는 자신처럼 눈치 보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 엄마한테 숨기지 않아도 돼.”

그런데 아이가 정말 솔직해지기 시작합니다.

“엄마 그 학원 싫어.”

“지금 공부하기 싫어.”

“엄마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잖아.”


그 순간 엄마 마음속 어딘가에서 억눌렸던 감정이 갑자기 흔들립니다.

“뭐야… 너무 버릇없는 거 아니야?”

“나를 무시하는 건가?”

결국 폭발하고, 그 밤 엄마는 아이 방 문고리를 잡은 채 한참 동안 문을 열지 못합니다.


그 문 앞에서 조용히 흘리는 눈물.

그때 엄마는 압니다.

지금 무너진 건 오늘의 나만이 아니라, 어릴 적 계속 참아야 했던 ‘그 아이’도 함께라는 걸.


우리는 아이와 싸우는 게 아니라, ‘옛날의 나’와 싸우고 있다

부모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애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애가 예민해서…”

“애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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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이의 기질도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면 부모마다 반응이 이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부모는 “오늘 많이 힘들었나 보다”라고 말하고,

어떤 부모는 “넌 왜 항상 이래!”로 폭발합니다.


이 차이는 결국 여기서 나옵니다.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대했던 방식의 복사본이다.

아이가 실수할 때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또 그러네?”, “넌 왜 이 모양이야?”, “너 때문에 힘들다…”

이런 말들은 아이를 향하면서 동시에 내 안의 아이를 향한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작은 아이’가 있다

내면아이를 어렵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떠올리면 됩니다.


내 마음 어딘가에 초등학생 아이가 하나 앉아 있다.

그 아이는 누가 소리를 지르면 몸이 움찔하고, 실수하면 “내가 문제야…”라며 혼자 결론 내리고, 표정 하나에도 숨을 죽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지금의 나보다 그 아이가 먼저 반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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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에게 화가 나는 순간, 사실은 내 안의 아이가 공포를 느낀 순간입니다.

신경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과거의 감정 패턴은 ‘습관’이 아니라 뇌에 저장된 ‘생존 알고리즘’입니다.

아이의 말투 하나가 과거와 연결되면 우리의 뇌는 지금 위험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면 심장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논리가 사라지고, 과거의 감정이 현재로 튀어나옵니다.

이건 나쁜 게 아니라 몸의 생존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오늘의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상처로 대물림 될 수 있습니다.


아이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 — 사실은 ‘나를 돌보라는 신호’

밤 11시.

아이 방에서 나온 엄마는 부엌에서 물컵을 씻다 말고 문득 손을 멈춥니다.

싱크대 물 위로 지친 얼굴이 비칩니다.

“나도…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


혹은 아이 방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 문을 열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는 순간.

어떤 엄마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오래 묵혀둔 울음을 터뜨립니다.

임상현장에서 저는 그 장면을 너무 잘 압니다.

지금 울고 있는 건 오늘의 당신이면서 동시에 오래 전의 당신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한 번도 보호받지 못한 감정, 표현하지 못했던 외로움을 그대로 안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되물림을 끊는 첫걸음은 아이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묻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화난 건 오늘의 아이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 전의 나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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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물림을 끊는다는 건 결국 “나를 다시 키우는 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이였습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을 들으며 자랐고,

누군가는 숨죽이며 자라야 했고,

누군가는 언제나 ‘참아야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도 우리 안에 조용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화내고 후회했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부모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건 단지,


아직 돌봄을 받지 못한 ‘내 안의 아이’가 드디어 나를 불러낸 것뿐입니다.

그 아이는 혼내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용기 내어 올라온 존재입니다.

그래서 되물림을 끊는 첫 단계는 아이에게 소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는 일입니다.


“그때 넌 정말 잘 버텼어.”

“넌 문제가 아니었어.”

“이제는 내가 너를 지킬게.”


이 말은 아이를 바꾸기 전에

먼저 나의 생존 방식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의 비밀 — 아이는 부모의 미래를 열고, 부모는 아이의 과거를 치유한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는 아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지만, 동시에 내 안의 과거도 함께 깨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책임지는 존재이면서
자기 과거를 치유하는 존재다.”

아이의 말과 행동이 나의 감정을 흔드는 이유는 아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의 행동이 내 상처의 좌표를 정확히 눌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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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아이에게 건네는 말을 바꿀 수 있습니다.

“왜 이 모양이야?”에서

“엄마가 지금 너무 벅차서 말이 이렇게 나왔어”로.

“너 때문에 못 살겠다”에서

“우리 같이 다시 해보자”로.

이 작은 변화 하나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던 상처의 흐름을 조용히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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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입니다.

하지만 ‘내 안의 아이를 다시 키우는 일’도 우리 모두에게 처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시 시작합니다.

이 반복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라는 리듬입니다.

오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

그건 당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당신 마음이 이제 드디어
“치유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 안의 그 작은 아이가 조용히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겁니다.

“엄마(아빠), 이제야 나를 봐줘서 고마워.”

그날,

당신의 아이도 조금 더 따뜻한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그 부모는 바로, 당신입니다.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