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이를 자꾸 설명하려 들까

이해의 언어가 관계를 닫을 때

by 김성곤 교수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설명을 잘하게 됩니다.

“원래 예민한 아이예요.”

“감정 표현이 좀 서툰 편이에요.”

“기질이 그래서 이런 반응이 나와요.”


이 말들의 출발점은 대부분 선의입니다. 아이를 함부로 보지 않기 위해서이고, 아이를 이해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설명은 점점 늘어나는데, 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점점 줄어듭니다.

부모는 아이를 잘 아는 것 같아지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지금 아이를 이해하려는 걸까요, 아니면 설명을 통해 스스로 안심하려는 걸까요.

3Wg_2M-sRsx7W9HfyN5js.png

이해하려는 말은 언제 ‘설명’이 되었을까요

요즘 부모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언어를 알고 있습니다. 기질, 성향, 발달 단계, 정서 조절, 애착, 성격 유형까지.

이 말들은 원래 아이를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들입니다. “왜 저럴까”를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꿔 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말들은 이해의 도구라기보다 아이를 정리하는 방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예상과 다르게 행동할 때, 감정이 요동칠 때,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일 때 부모의 마음에는 불안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리고 불안은 늘 비슷한 선택을 합니다. 불확실함을 줄이고 싶어지고, 이름을 붙이고 싶어지고, 아이를 하나의 성격으로 묶어 두고 싶어 집니다.

설명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됩니다.

BibcAX2EQPu5zg0bzL7wP.png

설명이 많아진 시대의 부모들

요즘 부모들이 아이를 설명하는 데 이렇게 능숙해진 이유는 부모의 태도가 바뀌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 빠르고, 너무 불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성적, 진로, 또래 관계, SNS, 비교와 노출. 아이를 둘러싼 변수는 많아졌고, 부모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설명은 그래서 등장합니다. 이해를 위해서라기보다, 불확실한 시대에서 부모가 붙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안정 장치처럼 말입니다.

아이를 설명하는 말이 많아질수록, 부모는 잠시 안정되지만 아이는 점점 혼자가 됩니다.


설명은 이해가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식’ 일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늘 같지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집과 학교가 다르고, 엄마 앞과 친구 앞이 다릅니다.

이 변화는 아이에게는 자연스럽지만, 부모에게는 꽤 큰 부담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고 싶어 집니다.

“아, 이래서 그런 거구나.” “원래 이 아이는 이렇지.”

설명을 하고 나면 부모의 마음은 잠시 편해집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관계는 조금씩 닫히기 시작합니다.

FS8cXNgKBkq-8OZ9Y_tmy.png

아이는 ‘설명되는 순간’ 말을 줄입니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꺼내려는 순간, 부모는 이미 결론에 도달해 있습니다.

“알아, 너 그런 상황에서 늘 그렇잖아.”

“그럴 줄 알았어.”

“네 성향상 어쩔 수 없는 결과야.”


이 말들은 나쁘게 들리지 않지만, 아이에게는 이미 결론이 나 있다는 신호로 전달됩니다. 지금 하는 말은 새로울 게 없다는 느낌, 나는 이미 설명이 끝난 사람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은 공감의 시작이 아니라 대화의 종료에 가깝습니다. 아이는 조금씩 말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이유

“그냥요.” “잘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 없어요.”

이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생각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말해 봐야 이미 설명될 거라는 걸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배웁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마음을 풀어내기보다 가장 안전한 대답을 선택합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덜 상처받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qgYe7gPfj8hwYFNvka6wQ.png

설명은 관계를 닫기도, 열기도 합니다

설명이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설명의 순서입니다.

아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오는 설명은 관계를 닫습니다. 아이의 말이 충분히 흐른 뒤에 나오는 설명은 관계를 엽니다.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 아직 열려 있다는 느낌입니다.


오늘, 이 말 하나만 바꿔 볼까요

설명을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조언을 하지 말자는 말도 아닙니다.

단 하나, 아이를 설명하기 전에 한 박자만 멈춰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물어보면 됩니다.

“그때 네 마음에서 제일 컸던 건 뭐였을까.”

“그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엄마가 아직 모르는 마음도 있을까.”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며 설명을 가장 많이 늘렸던 시기가 아이보다 제가 더 불안할 때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들은 아이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고정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아직 말할 자리가 남아 있다는 신호를 줍니다.


부모의 말은 아이의 성격이 됩니다

아이의 성격은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부모가 어떤 말로 아이를 대했는지에 따라 조금씩 굳어집니다.

설명 속에 자란 아이는 자기 마음을 요약하는 법을 배우고, 열려 있는 말속에 자란 아이는 자기 마음을 탐색하는 법을 배웁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겨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끝까지 말해도 괜찮다는 감각입니다.

hrV0pAkcHT9Adrujg3AXo.png

부모가 아이와 이야기할 때

관계를 닫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10가지

1. 아이 말이 끝나기 전에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머릿속에 답이 떠올라도, 말로 꺼내지 않습니다.

2. “원래”, “늘”, “항상”이라는 말을 줄인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아이는 고정된 사람이 됩니다.

3. 설명보다 먼저, 아이의 말을 그대로 되짚는다.

이해하려 들기보다, 제대로 들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4. 조언이 떠오를수록, 질문 하나를 먼저 던진다.

말하고 싶을수록, 묻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5.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같은 줄에 놓지 않는다.

느낀 마음은 존중하고, 행동은 나중에 다룹니다.

6. “이해한다”는 말로 대화를 끝내지 않는다.

이해했다는 말은 종종 대화의 마침표가 됩니다.

7. 아이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즉시 교정하지 않는다.

말해도 괜찮다는 경험이 먼저입니다.

8. 부모의 해석을 사실처럼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다시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9. 아이의 말이 길어질수록 대화의 속도를 늦춘다.

중요한 이야기는 대부분 뒤에 나옵니다.

10. 대화가 막히면 오늘은 여기까지여도 괜찮다고 말한다.

관계는 한 번의 대화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를 방치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다 알지 못한 채로도 함께 머물 수 있겠다는 선택입니다.

설명은 통제의 언어이고, 질문은 관계를 살리는 언어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계속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설명하려는 순간, 관계는 닫히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아이를 이해하려 애쓴 부모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설명이 많아진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함을 혼자 감당하느라 너무 애써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아이를 다 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직 모르는 채로 함께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 자리가 관계가 다시 열리는 자리입니다.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