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크리스마스를 알고 있다

나의 산타는 어디에…

by 김성곤 교수

크리스마스라는 걸 모르는 엄마는 없습니다.

거리의 불빛도 알고, 아이가 기대하는 표정도 알고, 오늘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날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웃고, 사진도 찍고, 외출도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즐겁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분명히 꽉 차지도 않습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채, 그냥 하루를 ‘해내고 있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런 날의 공허함은 특별히 불행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해내고 있는 사람에게 더 자주 찾아옵니다.

아이를 챙기고, 약속을 지키고, 역할을 놓치지 않으며 하루를 살아온 사람에게 말입니다.

문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느끼지 않는 쪽으로 너무 오래 살아왔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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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태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텅 빈 느낌이 먼저 남는 시기와 닮아 있습니다.

감정을 잃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뒤로 미루는 삶이 너무 익숙해진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태를 ‘감정둔마(emotional blunting)’ 혹은 ‘정서적 탈진(emotional exhaustion)’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이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엄마가 된 이후 많은 감정은 ‘나중에’로 밀려납니다.

지금은 아이가 먼저이고, 지금은 가족이 먼저이며, 지금은 책임이 앞섭니다.

서운함은 접어두고, 피곤함은 미뤄두고, 외로움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 쪽이 더 편해집니다.

버티는 데 집중한 마음은, 즐기는 법을 잠시 잊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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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엄마는 점점 ‘기능적인 사람’이 됩니다.

시간을 맞추고, 분위기를 관리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역할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나는 언제부터 나의 감정을 맨 뒤로 미뤄두었을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지나가게 만들고 있는 걸까.


아이에게는 늘 말합니다.

네 감정은 중요하다고, 느끼는 대로 말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한 채 살아온 날들이 쌓입니다.

그래서 어떤 엄마들은 말합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데도 혼자인 것 같다고.

웃고 있는데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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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허함은 실패의 신호가 아닙니다.

삶을 대충 살아서 생긴 감정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잘 해내느라, 감정을 쉬게 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흔적에 가깝습니다.

강해졌기 때문에 생긴 공백입니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안, 엄마의 감정은 늘 뒤편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배우고,

부모의 지시보다 표정을 먼저 읽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지 못한 채 하루를 버티고 있다면,

아이는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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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글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해 한 번 멈춰 서 보자는 제안입니다.

공허함을 없애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바라보자는 이야기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유난히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참고, 너무 오래 책임져 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산타를 기다리지 못할 만큼, 누군가의 산타로 오래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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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조금이라도 멈췄다면,

아래 질문에 조용히 체크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ㅁ 요즘 기쁘다는 감정보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ㅁ 쉬고 있어도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ㅁ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정리하는 데 더 익숙해졌습니다.

ㅁ 아이에게는 감정을 표현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늘 참습니다.

ㅁ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개에 체크가 되었다면,

당신의 마음이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너무 오래 단단하게 버텨왔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더 잘하려는 다짐이 아닙니다.

가끔은 감정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는 자리,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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