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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작가 Aug 28. 2024

여행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꿈 #여행 #인생

현실의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떠났다. 머나먼 곳을 지향하며 미래를 보고 싶어 선택한 여행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커피를 사랑한 친구와 나'


친구와 나는 대학에서 다도를 배우는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친구를 보자마자 내 과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일본인이면서 한국 친구를 대하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꺼려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활짝 열려 있던 친구와 나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늘 같이 다녔다. 가끔은 단돈 1만 엔으로 종일 케이크 뷔페를 즐길 만큼 케이크 마니인 것도 같았다. 시부야 역에서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까지 한 시간을 달려가 케이크 뷔페를 애용하곤 했다. 성향이 비슷한 우리는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1990년 대 일본에서는 도토루 카페 가맹점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케이크뿐만 아니라 커피를 좋아했던 마니아였다. 커피 맛에 조금은 까다로울 정도로 예민했고 같은 또래 친구들은 그런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는 매일 같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토루 카페를 방문해 책도 읽고 수다를 떠는 유일한 아지트였다. 도토루 카페는 지금의 스타벅스와 맞먹는 규모로 잘 성장했던 곳으로 주로 역세권과 상점가에 오픈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학생, 일반인, 직장인 너나 할 것이 없이 카페를 찾았고 서서히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였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아지트로 달려가 피곤함을 달래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순간 친구와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그날따라 평소와 다른 커피 맛에 놀라 바로 점장을 불렀다.  “오늘따라 커피 맛이 쓰고 뭔가 이상해요!” 점장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냥 외면하던 점장을 다시 불러 커피 맛을 보라며 잔을 들고 권했다. 눈 쌀을 찌푸린 점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분명 평소와 다른 커피 맛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마트를 가기 위해 도토루 매장 앞을 지나고 있었다.


점장은 지나가는 나를 보고 밖으로 나와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수줍어하며 말을 건넸다. 나는 지난번 외면했던 점장 얼굴이 따올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못 이기는 척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점장은 아무 말 없이 커피 한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것이 맛이 깊었다. 무슨 일이람! 속으로 삭이고 있는 나를 보며 점장을 말을 꺼냈다. “글쎄 지난번 커피 원두 종류가 바뀌었다네요!”  점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본사에서 원두 생산지를 바꾸어 커피 맛이 잠시 이상했다는 부연 설명을 시작으로 한 참 동안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닌가. 이후 나와 점장은 커피 이야기를 나누는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유난히 커피맛에 민감했던 나는 점점 더 카페 사업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친구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커피 맛을 분석하는 마니아가 되었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


1998년 12월 1일 유난히 매서운 바람에 기온마저 뚝 떨어졌다. 도쿄 세타가야구 산겐자야 역 인근에는 오래전부터 형성해 온 상점가가 밀집해 있었다. 산겐자야 역 인근에는 주택가도 많았고 높은 빌딩도 있었다.  미용실, 꽃 가게, 패션숍, 이탈리아 식품점, 일본 라면집, 유명한 빵집, 학원가 등 큰 규모의 마트도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비싼 임대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상권이 너무 마음에 들어 2층 건물을 선택하기로 했다. 상점가 중심 센터에 유럽 풍 인테리어를 완성하면서 12월 추운 겨울 Cafe De Crew점이 드디어 오픈을 마쳤다. 규모는 1,2층 포함하여 실평수 40평 남짓이었다. 친구는 대표가 되었고 나는 점장을 맡았다. Cafe De Crew 체인점은 일본 전역에 약 50곳 가맹점을 오픈한 체인점으로 당시 도토루 카페와 경쟁을 하기 위한 뉴 브랜드였다.


처음 가맹점을 선택하기 전 당돌하게도 당시 유행하던 스타벅스를 방문했었다.  직영 체계로 운영한다는 스마트한 답변이 돌아와 실망을 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카페 체인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의 아버님으로부터 식사 제안을 받았다. 친구의 아버님은 일본의 대표 유통회사 임원이셨다. 밤낮으로 카페 사업을 하겠다고 먼 이탈리아와 도쿄시 전역을 돌아다니는 우리의 철부지 없는 행동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듣고 싶어 하셨다. 그런 우리의 노력과 꿈을 느끼셨는지 친구의 아버님은 적극적으로 카페 사업을 도와주시기로 약속을 하셨다. 


아버님의 초기 투자금 덕분에 일사천리 카페 오픈을 결정할 수 있었고 법인 회사를 만들어 매월 정해진 금액을 갚기로 약속했다. 카페 사업은 다행히도 잘 운영이 되어 일 매출이 약 300만 원까지 올랐다. 가끔 상점가 일대에 차를 막고 행사를 할 시기에는 매출이 무려 500만 원까지 훌쩍 넘을 정도였다. 일대가 상점가인 것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 이유보다는 사이드 메뉴 구성이 참 좋았다. 샌드위치와 수프 그리고 샐러드와 디저트, 커피 종류가 다양했다. 


수시로 메뉴 개발에 노력하던 본사는 3개월에 한 번씩 메뉴 개발을 위한 회의를 했는데 산겐자야 점은 매출이 좋아 매번 참석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전국에서 가맹점 점주와 본사 메뉴 개발 직원들을 포함하여 대략 50명 정도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우리는 회의 자리에서 과거 이탈리아에서 경험했던 후기를 이야기하며 메뉴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다. 본사는 빠르게 사이드 메뉴를 출시하게 되었고 이후 매출로 이어졌다. 본사는 다음 2단계로 카페 소품을 판매하겠다는 결정에 또 우리를 참여시켰다. 카페 벽면 앤틱 그림, 텀블러, 커피잔, 머그컵, 앞치마, 핸드드립 기구 등 소품의 종류가 많아 매출은 더욱더 급상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정신적 지주는 바로 친구의 아버님이셨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지원과 더불어 깊은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님은 남다른 비즈니스 감각을 익히는 노하우도 알려주셨다. 남들보다 사업적인 면에서 촉이 발달하신 아버님은 늘 카페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이탈리아에 가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를 발굴하고 현실에 접목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카페 사업으로 시작해 훗날 편집숍 사업을 하기까지 답답하면 수시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통해 색다른 눈을 뜨게 된 동기였을 뿐만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을 꺼내며 응시하고 치유를 했다. 한때 쓰디쓴 에스프레소의 맛은 삼킬 수 없을 만큼 힘이 들다가도 희망이 되었던 이탈리아. 지루했던 내 인생의 환 한 빛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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