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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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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Jun 19. 2023

약을 먹고 있습니다.

: 난 괜찮아!

 




  몇 주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았다기보다는 확인을 받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나의 우울증은 꽤나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실이니깐. 우스운 것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우울증은 감기 같은 별거 아닌 병이고, 정신과 약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 중독될까 봐 혹은 너무 의존하게 될까 봐 겁나서 의사의 소견 없이 함부로 단약 하지 말고 꾸준히 먹어라.’ 말했으면서 나는 꽤 오래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면서 병원 문턱을 넘는 것조차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의 우울을 꽤나 오래 방치하고 있었다. 방치해 두면 어떤 날은 내가 우울했던가 싶을 정도로 명랑했었고, 또 어떤 날은 그냥 무던하게 지나가기도 했으니깐. 그냥 없는 존재인 것처럼 무시하고 살면 되겠거니 했다. 그러다 작년 여름부터 우울증은 조금씩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문장을 만드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다. 문장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으니 말하는 일도 버거웠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아, 그 단어 뭐였지. 요즘 말이 잘 안 나와."



  그리고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카페에 가서 같은 두 시간을 보냈어도 내가 만들어 내는 작업량 (가령 독서라던가 간단한 글쓰기 등)은 남편에 비해 질이라던가 양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혹은 나는 그 두 시간 내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스마트폰만 만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때에도 나는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다. 우울증보다는 그냥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지만, 마음속에선 그래도 게으른 사람은 정상의 영역에 속하고 우울증은 비정상의 영역에 속한다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 가봐."




  두 달 전 남편이 병원을 권유했을 때 나는 속으로 ‘그게 쉬운 일이니?’라고 화를 냈지만, 회사에 가만히 앉아 기만해도 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안 쉬어지는 날들이 잦게 이어지면서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우울증(+약간의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우울증 환자라고 인정하고 나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코로나블루다 뭐다 해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예약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운이 좋게 예약 후 2주 뒤에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은 또 상태가 나름 괜찮아져서 내가 정말 우울증이 맞을까?라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괜히 병원에 가서 안 좋은(?) 이력만 남기는 거 아닌가? 병원에 다녀오면 나중에 불이익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예약을 취소할까도 싶었지만 신체도 정기검진 받듯 내 정신건강도 검진을 받아보면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더불어 정말이지 글을 쓰고 싶었다. 우울증이 아니면 성인 ADHD일 텐데, 무엇이 되었든 글 쓰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싶었다. 한동안 마음의 상태로 인해 소설을 제대로 쓰지 못해 글을 좀 쓰고 싶었던 마음이 정말 컸다.)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약간은 긴장했지만 난 정상이니깐 별 이야기 없겠지,라는 최대한 가볍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떻게 찾아오시게 되셨나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팡팡팡파라팡팡... 선생님께 약물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검진 결과 약을 먹으면 좋겠다는 소견에 따라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처방받고도 3일을 먹을까 말까 고민을 했더랬다. 마치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약과 파란 약 같았다. 이 약을 먹는 순간부터 내 세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3일을 고민하고 그다음 날부터 약을 먹었다. 정말 내 세계는 달라졌다. 시간 위를 붕 떠있는 듯한 불안한 기분 때문에 무엇도 집중할 수 없었던 예전과 달리, 약을 먹고 난 뒤 시간에 안착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글도 책도 마음 편하게 쓰거나 읽을 수 있었다. 이 작은 알약으로 내 상태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약 효과가 바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역시나 나는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었고 건강했기 때문에 약간의 약효로도 이렇게 바로 정상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구나!라는 오만한 마음까지 들었다.



..

그러나 약을 먹은 지 2주가 넘어가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 나는 지하철 밖으로 보이는 한강을 보며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감에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약은 착실히 먹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연결하는 순간부터 숨이 쉬어지지 않기 시작했다. 급하게 필요시 추가로 먹는 약을 더 먹었지만 좀처럼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쉽게 우울과 공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우울을 연민하거나 혹은 전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신체가 다양한 것처럼 정신도 다양한 모습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도 없다. 나는 그저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감사하게도 주변에 내 우울을 밝혔을 때 다들 자연스럽게 "그랬구나."라고 넘어가주었다. 큰일 아니라고 넘어가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오히려 나는 더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내 우울을 인정하지 못했던 건 특이한 사람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가주니 너무나 고맙고 평안했다.



  아무튼 간, 나는 이렇게 하나 둘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들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10월, 10일. 그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을 잘 먹어가면서 잘 버텨보고자 한다. (-_<)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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