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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07. 2024

시작은 했지만 멈칫하게 될 때

나이가 들며 이상보다 현실을 쫓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 이런 게 보통의 삶인가 싶어 짧은 한숨을 내뱉기도 한다. Paul 제공

어느 주말,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싶어 한 카페를 찾은 바 있다. 집 근처 카페에서 하면 사람도 붐비지 않고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주말이란 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녔던 서울 모 동네가 이제는 많이 변해 새로운 카페들이 많이 생겼고 그 중 하나를 골라 방문을 해봤다.


창밖 풍경이 너무 좋은 곳으로 유명해 오후 3시쯤 방문했을 땐 카페 자리가 모두 만석이었다. 혹시 일어나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본듯한 낯선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언론고시를 통과해 기자가 된 아는 형이었다. 이 넓은 서울에서, 그것도 고르고 골랐던 카페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지 못했다. 내가 예상하던 형의 모습과 꽤 많이 달라져있었기 때문이다.


달라졌다는 게 옷을 어떻게 입었다, 스타일이 변했다 등은 아니었다. 얼핏 봤는데 얼굴이 매우 상해 보였다. 형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폭삭 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봤는데 모른 척 하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고 혹시나 아는 형이 아닐 수도 있어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다. 다행히도 형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나는 곧장 형의 이름을 불러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형에게 악수를 청하며 내가 가장 먼저 건넸던 말은 "많이 힘들다면서요"였다. 마와리를 도는 수습 기자들 가운데 힘들지 않은 자가 어딨겠는가. 다만 형의 어려움은 더 큰 것 같았다. 주변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어보니 기자란 직업 자체에 힘듦을 겪고 있었다. 이 업을 하려면 좀 악하기도(?) 해야 하고 너스레를 떨거나 영악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태생이 선한 형은 현장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냐는 형의 말에 "어디든 눈과 귀가 있다"는 말 이외에 별다른 위로를 전하지 못했다. 뭐 다 그런 것 아니겠냐는 푸념도 덧붙이긴 했다. 내가 뭐 대단한 선배가 되지 못할 뿐더러 이 업계에 이제 막 발을 디뎠는데 뼈에 사무칠 팩트를 나열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그저 힘내라, 시간이 되면 다시 보자 등의 말만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뒤 이후에 일정을 소화하면서 계속 형의 모습을 곱씹게 됐다. 그래도 오랜 기간 고민을 거쳐 원하는 꿈을 이뤄보겠다고 먼 타지에서부터 온 것인데 힘들어하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좋지 못했다. 문득 나에게로 시선을 돌려봤다. 난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걸까 아니면 맞지 않아도 삐져나온 부분을 한껏 욱여넣으며 괜찮다 애써 외면하는 것에 익숙해진 걸까.


처음 단독 기사를 낸 뒤 퇴근 무렵 친구와 집 앞에서 꽤 오랫동안 통화를 했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 일을 했을 뿐이지만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되니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기자를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지금껏 현업에 남아있으니 고민을 해결한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감정이 무뎌져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다. 어떤 일에 대해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것, 이를 두려워해 기렉시트하겠다는 동료들을 숱하게 봤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오늘날 취업의 문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좁으니 이같은 고민은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보통의 삶은 너무나 감사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원동력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상대적이란 단어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너와 난 다른데 꼭 동일한 삶의 형태를 쫓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게 주어진 한 번 뿐인 삶을 오롯이 내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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