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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15. 2024

사회부 기자의 평범한 오후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가며 내려서 뭘 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본 창밖 속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Paul 제공

어느 여유로운 오후쯤이었다. 이날 퇴근시간이 가까웠지만 별다른 사건 사고가 없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선후배들은 무더워에 열심히 돌아다니는데 이렇게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지난날 바쁜 사건들을 잇따라 처리하기도 했으니 내게 주어진 휴식 같은 날을 감사해야지 싶었다. 동생에게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갈 것이니 저녁을 같이 먹자는 연락도 남긴 바 있다.


마음 속으로 정한 퇴근 시간을 20분 정도 앞뒀을 무렵 별안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알림이 울렸다. 타사 선배의 연락이었는데 사건 기사 링크와 함께 소방 풀(pool)이 공유된 것이다. 이 메시지 직후 대화방에 있던 선배들은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나와 같이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리곤 "나 출발한다"는 문자가 잇따라 추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풀 문자를 보고 얼마나 깊은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르겠다. 간만에 여유롭게 집으로 복귀해 헬스장을 다녀온 뒤 저녁을 먹어야지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몸이 굼뜨면 현장 도착만 늦어질 뿐이었다. 곧바로 팀 단톡방에 보고한 뒤 택시를 잡았다. 내 보고를 받은 선배는 회사 전체 단톡방에 사건 개요와 함께 "폴 기자 현장 가고 있음"이라고 보고했다.


현장 도착까지는 20분이 걸렸다. 가는 동안 타 지역에서 내려올 기자들과 연락을 취하고 업무 R&R을 급하게 나눴다. 현장에 가면 누가 나의 백업을 담당할지도 정해졌다. 사건 담당 경찰 과장과도 통화를 하면서 갔다. 언제 통화가 안될지 모르니 미리 멘트를 들어두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한 날 본 타사 선배는 "스케치 취재는 했고 CCTV를 따야 한다"며 인사를 대신했다. 난 현장에 대충 가방을 던져 놓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근처 세워둔 차 블랙박스와 인근 가게 CCTV를 뒤지기 시작했다. 주변 목격자 인터뷰까지도 말이다.


이날 참 더웠는데 하필 오전에 정부기관 행사가 있어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다른 선후배들도 출입처가 같으니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랬지만 CCTV를 같이 들여다보던 선배는 얼굴은 물론이고 등에 땀이 넓게 퍼지고 있었다. 이런 우리가 딱했는지 식당 사장님은 나눠 마시라며 사이다를 건네주기도 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기사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취합한 우리는 퍼즐 맞추듯 기사를 마감하며 일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아까 낮에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현장에서 정신없이 보내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수가. 진이 빠진 덕분에 저녁은 가뿐히 넘길 수 있을 만큼 입맛이 사라져 있었다. 물론 집으로 들어가 닭강정을 시켜 먹었다는 건 안비밀로 하겠다. 주말은 아니었지만 뭔가 보상 받고 싶은 심리가 있었다랄까.


갑자기 발생한 사건 사고였지만 나름 잘 마무리가 돼 안도감을 쓸어내렸다. 급박한 현장에서 냉정하게 기계처럼 움직였는데 그래도 N년차 동안 헛일 하진 않았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모으기 위해 이상한 넉살이 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매일 아침 오늘은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아라 기도하는 건 절대 그만두지 못하고 오늘도 아주 빡세게 기도를 마치고 출근했음을 알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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