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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은시인 Apr 01. 2021

반복의 묘

오늘부터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스로 <일간 이슬아>의 연재노동자가 되어, 하고 싶은 일과 돈 버는 일을 일치시킨 이슬아 작가가 멋져 보였다. 비슷한 일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 일이 쉬웠으면 아무나 다 했겠지만, 일단 발을 내딛는다.  


글 쓰는 과정은 근육을 키우는 과정 또는 운동능력을 키우는 과정과 비슷하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빛을 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커피와 함께,  딱 원고지 20매를 쓴다고 한다.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 마무리해야 되는 책 원고 하나도 꾸준히 쓰지 못하고 자꾸 막히는 나에게 이런 ‘규칙성의 경지’는 꽤나 요원해 보인다.  


무엇인가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평생의 도전 과제다. 반짝이고 새로운 것을 쫓아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엔 자신 있으나, 반복적인 일을 그것도 매일 하라고 하면 쉽게 지쳐 버린다. 아마 이렇게 살지 않아도 어느정도 요행을 바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벼락치기 만한 효율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매일의 반복적인 일과 규칙성이 돈과 명예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타이밍 맞춰서, 위험을 감수하는 한번의 제대로 된 투자가 오히려 부를 가져다 주는 것이 오늘날의 불로소득 사회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가치를 바라보는가. 이 방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번 하루 종일 운동한다고 해서 내가 들 수 있는 중량이 늘어나지 않는다. 매일 같이 꾸준히 무게를 늘려가는 것이 무거운 무게를 드는 방법이다. 매일같이 수영을 다니며 이 진리를 다시금 깨닫고 있다. 장거리 수영 실력을 늘리는 것은 중량 늘리기보다도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매일 해야 그나마 조금 나지며 하루 쉬면 쉰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실력이 깎인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일같이 환자를 볼 때는 50명씩 진료를 봐도 거뜬한 데, 한동안 환자를 안 보다 보면 10명만 봐도 지쳐버린다. 이골이 나도록 반복하는 것. 매일 그곳에 있는 것. 그래서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운동선수가 연습 하듯 시합을 뛰는 것처럼, 수술을 하거나 환자를 볼 때 실력에 모자람이 없고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의사로서 내가 동경하던 것이다. 


근데, 이 가치가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근로’의 가치가 바닥을 찍어버렸다.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을 막아 되돌릴 생각은 없다. 다만 ‘반복의 묘’에서 나오는 그 아우라를 나와 내 주위에서 잃어버릴까 두렵다. 이 또한 컴퓨터와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일까.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세대임에도 그 아우라가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싫다. 일상의 장인들을 찾아 아직은 발버둥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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