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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Jun 01. 2020

홀딱 젖은 햇님이 만든 행복

소설 '모순'  / 양귀자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돼.

그러다 하늘 저켠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 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 소설 '모순' 중에서 / 양귀자 )  


먹먹한 글에서 벗어나 눈을 들었을 때, 버스는 한강 속으로 사라지는 해와 함께 성산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그 느낌을 알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사람에 부대끼고, 시간에 끌려다닌 하루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서서히 몰려오는 푸르스름한 어둠과 함께 꾹꾹 눌러져있던 우울의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 때부터 세상의 밝음이 어둠에 밀려 사라지는 해질녘의 시간은 늘 슬픔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와 함께 바닷가의 일몰을 거닐었다. 여전히 해가 사라지는 일몰의 모습은 이유없이 가슴 한 켠을 알싸하게 만든다.    


"우와~저거봐, 너무 예쁘다. 엄만 해지는 모습이 너무 좋아"


"어? 엄마, 왜 하늘 색깔이 이렇게 많아? 왜 하늘이 주황색이야?"


"응, 햇님이 밤이 되어서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거든."


"엄마..근데 햇님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홀딱 젖을 텐데, 어떡하지?"


아이는 여러가지 빛의 하늘을 신기한 듯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아이와 함께보는 일몰은 정말 햇님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홀딱 젖어버리는 동화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오랫동안 일몰을 바라보았다.  


삶은 참 신비롭다. 여전히 똑같은 해가 어제처럼 지고 있어도, 나의 마음에 따라 그 느낌은 전혀 다르다. 한없이 슬프기만 했던 일몰이, 오늘은 마음 따뜻한 일몰이 된다.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또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현재'의 해석은 달라진다. 똑같은 장소, 시간에 있어도 우리의 현재는 같지 않다. 해질녘의 하늘만큼이나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고, 붉은색 부터 검은색까지 전혀 다른 다른 스펙트럼 선상에 서서 현재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좀 더 나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너그러워져야 한다. 우리의 우주는 서로 다르고,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나의 삶에 대해, 그리고 너의 삶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유보해야 한다. 


여전히 해질녘 푸르스름한 하늘은 슬프다. 하지만, 이젠 그 푸르스름함 속에서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해를 그리며 조용히 미소짓는다. 아마 햇님은 홀딱 젖은 옷을 말리느라 오늘 밤은 잠도 못자겠지? 아이로 인해 내 삶에 행복한 풍경이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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