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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May 08. 2020

어버이날이 있어 다행입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미리 말을 해야지!  아침도 못 먹고 나왔잖아!!"


날카로운 고함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건강 검진을 받으러 새벽부터 병원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스물두어 살의 여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앞에 서있는 노인에게 무언가를 건네주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간다. 링게에 의지한 깡마른 노인은 여자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아버지와 딸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무언가를 가져 다 달라고 부탁을 했을 테고, 딸은 이 일로 머리도 감지 못한 채 새벽부터 서둘러 나왔을 것이다. 아침 한 끼 못 먹은 게 그리 큰 대수라고 아픈 아빠에게 저리 소리를 지를까 싶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딸의 말 한마디에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뒤돌아가는 딸의 모습 역시 속이 상했다. 환자복을 입고 구부정하게 걷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마주쳤을 때 딸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속상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모습을 좇는 아빠의, 엄마의 눈길을 외면하며 뒤돌아가는 내내 얼마나 많이 후회하고 미안해했던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나를 낳으시고 기른 부모님의 애씀과 사랑이 얼마나 큰 지 더욱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방을 치우며, 다 큰 딸의 방을 무릎으로 다니시며 걸레질을 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화가 나 엉엉 울며 소리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짜증을 내며 쾅 닫은 문 뒤로 속상해하셨을 엄마의 모습도 그리게 된다.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보며, 끙끙 앓다 잠든 내 곁으로 와 조용히 기도하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그땐 몰랐을까.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공감이 가네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


아직 서툴지만, 어버이날을 핑계로 두 분께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으신 엄마가 답문자를 보내셨다.


"엄마도 오늘은 엄마랑 아버지가 보고 싶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세상이 다 내 잘못이라 해도, 괜찮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토닥토닥해줄 엄마, 그런 엄마, 아빠가 아직 건강히 곁에 계셔 참 감사한 어버이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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