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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데어 Jun 11. 2020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딸에게 / 양희은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히고, 잠시 물을 뜨러 갔다 온 나에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아이가 대뜸 손등을 내민다.


"엄마, 여기 만져봐"


아이의 손등을 만졌는데 축축한 물기가 느껴진다.


"어? 이게 모야? 이거 모야?"


엄마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나 보다. 엄마의 커진 눈동자와 높아진 목소리에, 갑자기 아이는 웃음을 멈추고 입을 다문다.


"이게 모냐구? 이거 침이야? 침을 묻힌 거야??"


몇 번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를 다그칠수록, 내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졌고,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모냐구!  왜 대답을 안 해? 모냐니까??"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후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손등에 침을 발랐다며 이야기했다. 아이는 손등에 침을 묻히면 안 된다는 엄마의 훈계를(지금 생각해보면 일장 연설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곧 두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은 고요해졌다. 그 고요 속에 간간히 울음이 남은 아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고요와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한테 장난을 치기 위해 손등에 침 좀 묻힌 것뿐인데... 웃으면서 '그게 뭐냐'라고 물어봤다면 아이도 까르르 웃으며 '그냥 침이야'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손을 닦아주며 '손등에 침을 묻히는 거 아니야'라고 알려줄 수도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행복하게 잠이 들 수도 있었다.


아이에게 손등에 침을 묻히는 게 아니라고, 엄마가 물어볼 땐 대답을 해야지 그렇게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게 아니라고 잘잘못을 따져가며 가르쳐 주었지만, 사실 잘못은 내게 있었다. 뻔히 그게 뭔지 알면서, 아이의 입으로 그 말을 듣고 싶었다. 놀란 마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지 못하고, 그저 반항심으로 대답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놀란 눈과 커진 목소리가 아이를 더욱 놀라게 했을 것이다. 아이를 혼낼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더욱 명료하게 보였다.


천사 같이 잠든 아이의 옆에 누워 미안함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이 이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엄마가 좀 더 지혜로웠다면, 오늘 밤 아이는 좀 더 행복하게 꿈나라로  떠났을 지도 모르는데...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 줘!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 엄마가 딸에게 / 양희은 )


잠든 아이를 보며 몇 번을 속삭였다.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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