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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타 Jun 09. 2021

영웅신화의 파괴와 조소

영화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 1984 를 보고

1. 필모그래피에서 세르지오 레오네가 보여준 것은 웨스턴으로 상징화된 미국 영웅신화의 파괴와 조소였다. 존웨인이나 게리쿠퍼같은 주인공들은 더이상 선과악의 이분법의 공식에 있지 않다. 그들은 대의명분이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선한자"들이 아니다. 인물들은 이해와 탐욕으로 서로를 음모하고 배신한다. 인간본성의 추악한 내면묘사에 집중하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쇼트 테크닉은 그래서 레오네에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극단으로 서로를 몰아가 벼랑끝에 서버린 주인공들은 이제 한 순간의 결투를 위해 목숨을 바꾸기로 한다. 영화는 짙은 허무와 공허함의 궤적을 그리며 마지막 한방에 쓰러진다. 돈과 권력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인간들에 대한 지독한 염세주의를 레오네의 영화는 품고 있는 것이다


2. 이런 세계관을 가장 집약해서 보여준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원스 어폰어 타임인 아메리카> 이다. 이 영화는 코폴라의 <대부> 와는 또 다르게 냉혹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시선으로 미국현대사를 해부한다. 영화 속 갱단은 노동조합간부와 결탁해 정계를 장악하고 비리를 저지르며 동료를 죽이고 배신하고 부를 축적한다. 가장 믿었던 친구(제임스 우드)는 주인공(로버트 드니로) 을 배신하고 여자를 빼앗고 돈을 가로채며 삼십년을 죄책감에 숨어살게 한다

3. 플래시 백(과거)과 플래시 포워드(미래의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것) 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편집기법은 삼십년동안 숨어지낸 후 자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고 정처없이 기억 속 장소들을 떠도는 로버트니로의 내면과 합일하면서 그 어떤 느와르영화에서 볼 수 없던 서정적이고 쓸쓸한 정조를 만들어낸다.
영화에도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과 그대로 일치하는 엔리오모리꼬네의 음악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인간사의 지옥을 본 로버드니로의 마지막 미소는 심장을 멎게 한다.

4. 4시간이 넘는 감독편집판을 미국 제작사는 두 시간으로 무자비하게 잘라 상영했고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버린 비운의 영화는 흥행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업친데 덥친격 한국에서는 30분이 더 잘린 109분짜리로 상영된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는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본 것이었을까


5.혹자는 주인공이 자신의 첫사랑(데보라)을 강간하는 장면에대해 불편하다고 비난한다. 내가 보기에도 힘이 들정도로  강도높은 장면이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났다. 몰래 훔쳐보며 마음을 키우던 첫사랑이었지만 거절당했고 그 후로 십년을 감옥에서 청춘을 보냈으며 감옥을 나와 처음 만난 첫사랑이 내일 헐리우드로 떠난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보내야했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금껏 영화가 여성들을 신비화하거나 대상화했던 적이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그건 영화안에서 늘 일어나는 일상이었다.
알다시피 그 분야의 선구자로는 히치콕이 가장 전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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