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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들을 응원합니다

by 스프링버드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라고 열여덟 살이 되면 세상으로 나와 자립해야 하는 청년들이에요. 이 책은 그런 청년들 여덟 명의 이야기가 실려있어요. 너무 막대한 어려움을 인생의 이른 시기에 경험했으나 단지 그것만으로 그들의 존재를 간단히 정의할 수는 청년들입니다.


개인적인 삶을 공개하는 일은 여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닐 거예요. 학교를 다닐 때 자신이 보육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청년들에게는 절대로 숨겨야 할 비밀이었습니다. 대학에 가서까지도 한 청년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노라고 털어놓고 있습니다.


(내가 군 면제를 받은 것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가 있었다. 보육 시설에서 5년 이상 보호된 이력으로 군 면제가 된 것이다. 몸도 튼튼하고 삼대독자나 메달리스트도 아닌 내가 군대를 안 가니 당연히 함께하던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다르게 보는 시선이, 그리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두려워서 남들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동기 및 선배와 주고받는 대화 중 부모님이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어가던 대화를 멈추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대화 주제를 전환하기에 급급했다.


또 한 청년에게 엄마의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고 아빠는 술을 마시며 화가 나면 딸이 가장 아끼는 것부터 부수는 사람이었죠. 그 청년도 털어놓았어요. '가장 소중하면 먼저 망가진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이 청년에게 보육 시설은 따뜻하고 안전한 가정이었습니다.


나에게 시설은 좋은 곳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차려 주고, 학교에 다녀와도 항상 누군가가 반겨 주고, 안락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나의 소중한 물건이 온전하게 있었다... " 아, 이런 줄 알았으면 그때 빨리 올 걸!"


이 청년 그러니까 이 젊은 여성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어요. 그것은 바로,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존재만으로 사랑스럽다는 진실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죠.


어릴 적부터 어딘가 고장 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살고 싶지 않았다. 사는 것보다 죽음을 원했던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 세상에 무서운 것은 없는 이상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이른 임신으로 생긴 나의 소중한 아이는 나를 변화시켰다. 처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생겼다. 끝까지 지켜 내야만 했다. 문득 '이 아이를 두고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죽는 것이 싫어졌다. 처음이었다.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부모님의 단점을 이야기한다는 건 내키지 않았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자신을 낳아준 분들이고 더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뿌리니까요. 어느 청년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도 놀랍습니다.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엄마는 자신과 동생을 데리고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그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돈을 훔쳐 갑니다. 흉기로 협박하고 위협을 가하는 아버지를 피해 세 사람은 매번 이사를 가야 했고,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새 집을 알아내 찾아오죠. 자식을 키우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아버지를 따라가면 엄마를 괴롭히지 않을 것 같아서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자신은 초등학교 고학년이고 동생은 일곱 살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는 집이 아닌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갔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마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을 보냅니다. 어린 자식들을 곁에 두고요. 아이들은 종이 박스를 주워 덥고 '굶주림과 추위,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이 되어 너무 배가 고팠고 아버지에게 이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자 아버지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걸어갑니다.


아버지는 명함을 꺼내서 한 식당에 들어가더니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하셨다. 순간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충격이었다. '아버지가 지금 구걸하는 건가?' 술에 취한 아저씨와 곁의 아이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과 말을 여태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청년이 아버지가 되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사랑을 알겠더라고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어떤 환경에 처해도 자녀를 위해 희생하며 양육한다. 내가 부모가 되어서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가정이 깨지는 것을 막고자 노력하셨다. 결국 가정이 깨졌지만, 엄마는 우리 두 형제를 잘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홀로 일하며 버티셨다. 비록 아버지는 술 중독으로 길에서 노숙하는 무능력한 형편이었지만, 자식들이 굶어서 배가 고픈 것을 알고 길에서 구걸해서 겨우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시켜 주셨다. 자신은 밥을 먹는 우리를 가만히 지켜만 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우리는 피합니다. 그의 고통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외면하는 우리를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 약한 존재들이니까요. 그러나 운명처럼 우리 중 누구는 그 고통 속에 놓입니다. 스스로 받겠다고 나선 것이 아님에도, 누구는 고통 속에 놓이고 누구는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 있습니다. 이 책의 청년들은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어렵게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놀라운 얘기들을 하고 있네요. 인간의 어두운 면과 더불어 그들이 발견한 빛나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 빛나는 것들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와 연민입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여러 해를 지나면서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딸들을 사랑했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빠도 마음의 근육이 약한 사람이라서 딸들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빠도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사랑받고 싶은 어린 나와 같았다.


어느 날 같은 시설에서 퇴소한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모이고 보니 각자의 삶이 급해서 돌아보지 못했던 서로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고 해요. '세상의 풍파에 열심히 견디고 버텨 낸 인생의 상흔‘이 보이더라고 말이죠. 서로를 대견해하고 안쓰러워하며 그들은 결심합니다.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 관계를 만들어보자고요. 이렇게 해서 '열매를 꿈꾸다'라는 이름의 '몽실'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그들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후배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종종 후배들이 자립에 대한 질문을 한다. 주거의 문제, 재정의 문제, 진로의 문제 등등. 사실 우리가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그 고민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이 되어 주는 것, 끊임없이 잘해 낼 수 있다고 응원하고 믿어 주는 것, 힘들 때면 기댈 곳이 되어 주는 것, 그래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 이것이 '몽실'이라는 나무로서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실은 고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역시 이것인가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 곁에 있어주는 것 말입니다.






눈이 내린 아침입니다. 아름다운 정경 속에 아름다운 청년들의 삶을 겹쳐놓으며 아름다운 음악으로 우리의 마음이 깨끗이 씻겨지기를 바라는 아침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J-LKEH6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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