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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행 작가 Dec 02. 2021

도전은 살아있다는 증거

한국의 닉 부이치치를 꿈꾸다

단 한 걸음 걷는 것부터 시작된 도전     


“진행아! 일어나 천천히 걸어 봐!”

아버지의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힘이 없었다. 한발 나아가려 다리를 쥐어짰다. 마음은 저기 앞에 가 있지만, 한발도 내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음에는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는 기적처럼 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열 군데가 넘는 병원에서 걷지 못할 거라고 진단했던 내가, 한 걸음을 걸어내고야 말았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난 내 삶은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외갓집에서 특수학교 다니던 나는 일반학교로 옮겨 다시 1학년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 몇몇 아이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보라고까지 했다. 담임선생님이 그런 친구들을 혼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서울로 전학을 했다. 일반 중학교에 1년 다니다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특수학교로 진학하며 기숙사을 시작했는데, 이때 생활이 자립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전국 장애인 체전’에 출전하였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내 자신과 싸웠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도전이었다. 몇 달 뒤 ‘경기도 장애인 체전’에서 메달을 2개를 획득했다. 

공부에도 욕심이 많았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담임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뜻이 맞는 친구 몇과 독서실에서 종일 자습을 했다. 나름 노력했지만 시험에 떨어졌다. 겨울방학 동안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방송대 입학 지원을 제안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법학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12년 만에 졸업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용기   

  

직장 생활도 몇 번 해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사법 고시는 응시조차 못했고, 공무원 시험은 매번 떨어졌다.  그러다가 1인 기업으로 꽃 판매 사업을 시작하며 관계의 소중함을 배웠다. 지금은 지인의 조언으로 ‘사진 액자 화환’쪽으로 전환해 현재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CBS 모니터링 업무에도 지원하여 일하는 중이다. 근무 시간이 다소 자유로운 편이라 사진 액자 화환 사업과 겸하면서 글도 쓸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SNS에 글을 써서 올리는 게 재미있다. 전하고 싶은 나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면,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었다.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내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모 작가의 저자강연회에 갔다가 책쓰기 스승인 이은대 작가를 알게 되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수소문 끝에 이은대 작가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용기 내어 전화를 한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2020년 6월, 나의 첫 책 『마음 장애인은 아닙니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올해 두 번째 책 『나는 매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를 출간했다. 

나는 영화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9년에는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에 <베리어프리>라는 작품으로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코로나19로 영화 촬영이 쉽지 않지만, 곧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기대하고 믿는다. 이를 위해 요즘은 영화제작 공부를 하고 있다. 다양한 단편영화를 보며 감독의 제작 의도, 카메라 각도, 배우의 표정과 말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면서 나만의 영화제작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한편으로 나는 강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체장애인 닉 부이치치 이야기는 강사의 꿈을 갖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강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작가가 되기 전에도 여러 곳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면서 발음을 포함한 여러 몸짓 등, 내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다. 코로나19로 줌으로 저자강연을 하는 요즘, 듣는 사람들이 내 발음이 정확하게 들린다고 하면 연습의 효과가 나타남을 느낀다.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강의할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발음연습을 한다.     


도전을 통해 얻은 삶의 의미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온 지 47년. 단 하루도 순탄했던 적 없다. 왜 나만 이런 운명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수도 없이 원망하고 좌절했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삶이라면, 불편한 내 삶을 통해 뭔가 보여 주어야겠다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한 걸음’ 도전했을 때, 어쩌면 그 때가 내 인생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체전에 나가고 입시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하고 사업도 하면서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고 성취보다 좌절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도전 자체가 즐거웠고 과정에서 배웠으며 매 순간 성장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매일 운동하고 산에 오르고 발음 연습하고 글을 쓴다. 3개월 전부터 캘리그라피도 배우고 있다. 강사라는 꿈을 품고, ‘한국의 닉 부이치치’가 되고자 치열하게 살아간다. 도전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자신을 향한 투자다. 도전하는 동안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다. 덕분에 감사를 배웠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도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것조차 ‘도전’인 나의 인생. 불평과 불만 가득 쏟아내며 살아가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 얼마나 부러운 마음 드는지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나 같은 사람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산다. 힘들고 지쳐 주저앉은 사람 있다면 손 내밀어주고 싶다. 마음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을 전해주려 한다. 치열한 삶이 가져다주는 감사와 만족과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내 삶을 통해, 나의 도전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  위 글은 한국장애인개발원 사외보<디딤돌>에서 원고청탁을 받아 겨울호 권두칼럼 'Overview'.에 실린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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