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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ug 18. 2023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읽고

    



지난 6월 ‘인천아트북페어’에 셀러로 참여했다. 판매하는 책 한 권만 덩그러니 놓고 있기 뭐해서 한 달 전부터 뜨개 동영상 보면서 티코스터도 만들고 판매 부스를 예쁘게 꾸밀 엽서도 제작하고 독립책방에 흩어져있는 내 책도 모으면서 나름의 준비를 차곡차곡했다.   

   

기대 속에 다가온 행사일, 야심 찼던 마음은 내 책을 들춰보고 그냥 지나가는 몇 명 앞에 빠르게 소진됐다. 나 역시 들춰본 책을 모두 사지 않을뿐더러 어떤 부스는 자세히 살피지 않고 훑었으면서도 그랬다. 준비에 쏟은 노력과 시간이 아까웠고 뜨개질하느라 고생한 손목도 안쓰러웠다. 꽃다발까지 준비해서 찾아준 지인들에게는 괜한 부담을 준 것 같아 한없이 미안했다.     


이런 내 생각과 달리 지인들은 너무 즐거워했다. 부스마다 방문해서 기념품부터 책과 그림까지 취향대로 쏙쏙 잘도 골라서 구입했다. 몇 바퀴 돌고 나면 내 부스로 모여들어 구입한 작품을 공유했고 좋은 건 다시 보러 우르르 몰려갔다. 재미난 걸 발견한 게 기쁜 나머지 한껏 들뜬 여고생 같았다. 이런 행사가 있는지 몰랐다고, 덕분에 좋은 걸 알게 됐다며 내년엔 가족과 함께 오겠다고도 했다.      


그날 책벗이 구입했다며 이 책을 보여줬다. 좋은 제목을 만나면 ‘띵’ 종이 울리는 느낌을 받는데 그날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문장은 <빅토리 노트>라는 책에서 이옥선 작가가 노자의 사상을 인용해 경고한 문구로, 그날의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북페어’를 위해 한 달간 온갖 준비를 한 나, 그 시간만큼 기대가 커진 나, 정작 당일엔 진이 빠져 즐기지 못하는 나, 본질을 잊고 최선만 다했던 나에게 주는 경고였다.       


얼른 읽고 싶어서 책벗에게 받자마자 시작했는데 초반엔 갈피가 좀 안 잡혔다. 황선우 작가와 김혼비 작가의 만남이 책을 쓰기 위한 모종의 작전(?)처럼 느껴졌고 주고받는 편지글에선 알 수 없는 어색함이 흘러나와 제목에서 받은 강렬한 호감이 자꾸 피식피식 새어나갔다. 그러다 탁구와 오타 이야기쯤부터 슬슬 발동이 걸리더니 뒤로 갈수록 너무 재미있어서 책이 끝나가는 게 무척 아쉬웠다. 그러곤 마지막에 있는 김혼비 작가의 말을 읽은 뒤 책 초반에 내가 느낀 불안정한 느낌의 이유를 알게 됐다. 평소 편지 쓰는 걸 무척 어려워했다고, 그래서 처음엔 목탁이 필요할 만큼 헤맸지만 시간이 갈수록 즐거워졌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무슨 글이든 툭툭 잘 쓸 것 같은 천하의 김혼비 작가도 자신 없는 글이 있단다. 편지글만큼은 쓰고 싶지 않아서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보며 모든 것을 이기는 본질은 역시 즐기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했다. 요즘 나는 며칠째 풀리지 않는 ‘프롤로그’를 붙잡고 끙끙대고 있다. 최선을 다해 제일 근사한 것을 내놓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그렇다. 그 최선이 때로 글을 더욱 꼬이게 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은 잠시 내려놓고 나부터 내 글을 즐기는 여유를 짐짓 부려보는 것도 좋겠다.      

     

아니, 기본적인 식사와 거주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군자라 되어서 다 무슨 소용이죠? 제가 깜짝 놀라 분개하며 이 내용을 전했더니 김하나 작가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군자 너무 별론데? 그거 하지 말자, 군자비추.” P152 황선우


#최선을다하면죽는다 #황선우 #김혼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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