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이란 부제와 달리 이 책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날카로운 이성이 전하는 차갑고 통쾌한 직언에 가깝다. 특히 뇌과학자와 임상심리학자가 제공하는 정확한 정보는 제대로 알지 못해서 짚어온 헛다리를 확인하게 한다. 덕분에 ‘자존감’이란 단어에 대해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시원하고 유익했다.
한창 내 아이를 키우고 남의 집 아이들과 독서수업하던 2010년대에 ‘자존감’이란 말은 모든 문제에 갖다 붙일 수 있고, 그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 같았다. 아이들의 기질과 환경,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과 태도까지 모든 것은 ‘자존감이 높아서, 혹은 낮아서’로 귀결되었다. 내 아이의 자존감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자신 없다 보니 아이 친구 엄마들과 삼삼오오 만난 뒤엔 없던 걱정도 꿈틀꿈틀 올라와서 한동안 마음이 침침했다.
나는 왜 괜히 자존감 같은 걸 알아버렸나. 대체 이놈의 자존감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 것이란 말인가. 자존감에 사로잡히자 아이가 끌어안은 사소한 걱정과 자신 없는 태도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론 자존감을 키워주지 못한 게 엄마의 잘못 같아서 미안해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 책은 그런 혼란에 지친 사람들에게 ‘높은 자존감은 허상’ (P18)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절대적으로 높거나 절대적으로 낮은 자존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강의 시간에, 높은 자존감이란 ‘착한 지도교수’나 ‘부모의 손이 필요 없는 아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 속 동물인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P24
심지어 자존감이 높은 ‘척’ 하는 것(P35)도 도움이 된다면서 사회적 가면은 다양할수록 좋고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기능이자 기술이라고 한다. 1890년대에 ‘자존감’이란 용어를 처음 심리학 영역에서 사용한 ‘윌리엄 제임스’의 정의를 인용하면서 자존감의 문제는 자신의 성취를 얕잡아보고 스스로를 하대하거나 남에게도 들이밀지 않을 엄하고 모진 잣대로 자기 평가(P22)를 일삼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첫 챕터부터 근본도 모른 채 단단하게 굳은 편견에 시원한 균열을 준다. ‘다 잘될 거야’ 식의 성급한 해결이 아니라서 좋고 성숙한 수준의 재양육을 자기 자신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도 위안이 된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은 “뼈를 때리고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평가가 딱 들어맞는다. 읽다 보면 머릿속은 정리되고 뭉쳤던 마음도 가볍게 풀린다. 유연한 몸과 단단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듯 나를 돌보는 에너지를 북돋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자가발전 하기 위해 옆에 두고 꾸준히 읽으면 좋겠다. 과거의 나와 지난 기억으로 여전히 괴로운 시간 속에 있는 분과 ‘왜’라는 끊이지 않는 질문을 ‘어떻게’로 변화시키고 싶은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과거의 단편들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만들지 마세요.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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