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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an 03. 2024

<검은꽃>을 읽고

 

김영하 작가가 서른여섯에 쓴 이 책은 얼마 전 출간 20주년을 맞아 기념판을 냈다. 당연하다는 듯 그즈음 인친님들의 리뷰와 초판폰 인증 사진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나 역시 참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관심 있게 보다가 누군가의 리뷰에 ‘나만 이 책 없나요?’ 라며 자조 섞인 댓글을 남겼던 것 같다. 며칠 후 메일 확인해 보라는 디엠이 왔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서 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가까운 친구보다 나를 금세 파악해 버린 인친님의 연락이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이 책이 선물로 도착해 있었다. 그 분 덕분에 나도 이제 이 책을 가진 독자가 됐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전작을 몇 권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간 읽었던 세련되고 차가운, 도시 냄새 폴폴 풍기는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특유의 유머조차 싹 거둔 채 1905년 멕시코행 배에 오른 1033명의 운명을 뜨거운 열기로 휘몰아치듯 그려낸다. 그 힘에 압도되어 굴곡진 그들의 서사와 아슬아슬한 운명의 향방만을 따라 마음 졸이며 읽었다.      


하나뿐인 생명과 온 운명을 걸고 과감한 결정을 내린 1033명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요즘 하는 말로 ‘퍼스트 펭귄’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차가운 바다에 거침없이 뛰어든 그들의 운명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닮았는지 끝없이 몰락하고 고통 가운데 가라앉아버린다. 작품의 소재 자체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도 있지만 그걸 그려내는 문체의 속도감이 엄청나서 읽는 동안 잡념 하나 끼어들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간중간 올라오는 의문은 곧잘 묻혀버렸고 다 읽은 뒤에는 그 궁금증을 다시 떠올리기도 전에 허망한 마음에 빠졌다. 국가란 무엇인지, 종교 사이에 경계란 존재하는지, 선택이 거듭되면 그것이 곧 운명이 되는 건지, 그렇다면 운명이란 애초에 무의미한 것이 아닌지... 수많은 생각이 드나들었다.     

 

작품에 흐르는 종교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느끼며 예전에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가 떠오르기도 했고 요즘 즐겁게 보고 있는 드라마 ‘연인’ 속 병자호란의 상황이 중첩되기도 했다. 그 드라마 속 이장현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몸을 피한 왕을 구하겠다는 의병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백성을 구하지 않는 왕을 대체 왜 백성들이 목숨을 내놓으며 지켜야 합니까?” 멕시코로 향한 1033명을 보며 이장현의 그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들은 조선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천한 신분이란 이유로, 허물어져가는 왕족의 지체라는 이유로, 자신의 운명을 태평양 파도 위에 내놓아야 했고 나라를 잃은 뒤엔 돌아갈 나라가 없어 헤매거나 다른 나라의 혁명에 휩쓸려 자신의 생명을 다시 걸어보기까지 했다.


애니깽, 하와이 이민역사,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죽음.. 분명 배웠고 그래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지만 이 책과 역사드라마를 보며 내가 모르고 있던 것만 분명히 인지하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것만 드러나는 아이러니라니... 삶을 개척할 용기를 내고 보다 깨인 사람으로 살아가려 할수록 역경과 역모에 휘말리는 시대의 아이러니는 읽을수록 가슴 아팠고 그것이 그때 그 시대만의 아픔일까?라는 생각에 닿자 잠시 미뤄두었던 허망함이 어쩔 수 없이 또 밀려온다.      


#검은꽃 #김영하 #복복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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