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정해졌을 때 앞으로 뭘 할지 목록을 주르륵 적다 보니 꽤 설렜다. 그동안 미뤄왔던 각종 기기의 수리, 꾸준한 운동, 그리고 글쓰기, 외국어 공부, 그림 그리기, 대청소 등등.
이 중에 내가 실행에 옮긴 거라고는 냉장고 정리뿐. 그것도 냉동칸은 손도 안 대고 냉장칸만 간신히 해냈다.
1인 미디어, 유튜브, 개인방송, 브이로그가 대세가 된지도 오래인 이 시점. 솔직히 나는 유튜브를 시청조차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백수가 되어 남아도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유튜브에 손이 가게 되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는 여전히 유튜브 어플에 손이 잘 가진 않는다. 집에서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는데 채널은 그렇게 많음에도 볼 게 없어 이리저리 리모컨을 만지던 중 티브이 메뉴 속 유튜브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정말 다양한 콘텐츠들과 사람들이 넘쳐났다. 허구한 날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생각만 할 뿐이다 보니 장비를 사는 것도 웃기다고 여겨져 스마트폰으로 소박하게 영상들을 찍어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편집 어플을 설치하여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하.."
손가락 터치로 섬세한 작업을 하려니 영 나와는 맞지 않겠다 싶어 PC에서 편집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였다. 하지만 내 PC는 윈도 32bit에 메모리 2GB. 이것만으로도 게임 끝. 그렇다고 고성능의 컴퓨터를 사는 것도 나에겐 사치이다.
이러한 좌절감을 끌어안고 있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하소연을 할 참으로 말을 꺼냈다.
"오빠, 나 유튜브는 역시 못할 것 같아."
왜?라는 물음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라도 분명 내가 포기할걸 예상했다고 한다.
허탈했다. 서운하고 속상했다.
단순히 저렇게 정 떨어지리만치 팩폭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속상했고, 남편의 머릿속에 나는 그저 난리만 치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박혀버린 현실도 속상했다. 그 현실은 내가 만든 것이기에 더더욱.
아무리 그렇다 할지언정 저렇게까지 말하는 남편이 너무 미워졌다. 원래도 말투가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닌 데다가 이번 남편의 반응은 더한 폭언으로 느껴졌다. 설령 그렇게 느껴져도 그냥 그러려니, 얘가 또 시작이군 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냉정하다.
이 일이 화두가 되어 큰 싸움으로 이어졌다. 난 아직도 하고 싶다 말만 하고 제대로 노력조차 안 하는 나보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분 나쁘게 하는 남편이 이 싸움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이런 일로 나를 이렇게 몰아세우거나 비난하지 않는데 왜 내가 남편에게 이런 무시를 당해야 하는 건지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이 싸움의 원인은 뒤로하고 내 문제를 얘기해보자면 역시나 나도 문제다.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사무실 책상 위 컴퓨터만 바라보며 일하는 것 빼고는. 그림도 그리고 싶고 사진도 잘 찍고 싶고 외국어도 잘하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다. 그래서 늘 발은 들여놓는다. 아주 얕게.
스스로 변호를 좀 해보자면 나는 평생을 가난하게 혹은 빠듯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충분한 투자를 나에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림을 미술학원에 돈을 주고 다니며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나는 외국어를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집중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나는 좋은 카메라를 들고 멋진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다 불가능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은 변호가 아니고 핑계이다. 물론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취미가 직업이 될 정도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주변엔 독학으로도 얼마든지 전문가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나는 '근면성실'이 꽝인 사람이다.
그나마 잔뜩 돈 들여 장비발만 세우고 흐지부지해버리는 사람들보다는 좀 낫다고 위안 삼아본다. 난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그림의 경우 동네 회관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연필화를 배워본 적이 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나도 끝이다. 글의 경우 지역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었다. 과제를 내고 과정이 다 끝나면 나도 끝이다. 일어학원도 국비지원으로 저렴하게 다녔다. 수업 외에는 예복 습도 하지 않았고 자격증 시험을 대비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어려워지는 레벨을 극복해내지 못한 채 관뒀다. 사진도 좋은 카메라를 살 수는 없었지만 내가 가진 카메라 가지고도 심도 깊은 기술을 익히려 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기 식 감각적인 사진을 찍는 데에만 멈춰져 있다. 그 어느 하나 '나 이거 잘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
전부 '나 이거 좋아해' 수준일 뿐이다.
이럴수록 나 자신을 믿고 독려하며 화이팅을 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도 역시 난 안돼. 어차피 이러다 또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정말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지겨운 업무를 보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편할 때도 많았고 월급루팡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업무강도가 낮은 적도 많았지만 그저 그런 생활패턴이 싫다. 그래서 백수인 지금이 너무 좋지만 인간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일이 좀 힘들지언정 틀에 박히지 않고 고정적인 패턴이 아닌 일을 잘하고 싶고 그런 것으로 돈을 벌고 싶다.
어떻게 하면 나의 게으름과 귀차니즘을 무찌르고 남아도는 시간을 꽉 채워가며 살 수 있을까. 이 글을 마무리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또한 우선적으로 브런치에 글쓰기 또한 놓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