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의 전세계약기간이 곧 끝난다. 일찍이 담당 부동산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집의 집주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입자와 직접 연락을 하지 않는다. 굉장히 꺼려한달까. 세입자라고 무시당할 이유가 없는데도 내 입장에서는 괜히 무시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벽에 에어컨을 설치해도 되는지, 구동기가 고장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부 부동산 직원을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재계약건도 마찬가지. 물어보는 것도 부동산 직원이, 계약서 작성도 부동산 직원이 대리로 했다. 요즘 같은 전세난에 보증금 5프로만 올려준 것에 대해 부동산 직원은 나에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집주인에게 감사전화라도 드리란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고마워도 내가 스스로 고마워할 일이고, 연락을 해도 내가 알아서 할 일인데 그 부동산 직원은 그 집주인과 도대체 어떤 관계이길래 저렇게도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에 집주인과 교류라도 있거나 세입자에게 호의적인 타입의 성격이었다면 나도 기꺼이 감사인사 정도는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전혀 없다 보니 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그래, 요즘 같은 시기에 이 가격에 재계약한 거면 좋은 일인 거지. 하는 마음으로 집주인에게 간단한 감사문자를 보냈다.
답장? 예상대로 '읽씹' 역시나구먼.
그러던 중 최근 집이 이곳저곳 말썽이라 수리를 싹 받았다. 월세도 아니니 내가 살면서 고장 나거나 소모되는 것들은 당연히 내가 지불해야 할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파트가 노후됨에 따라 망가지는 부분들은 아파트의 소유자가 수리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 수리비가 적힌 영수증을 부동산 직원에게 보내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보증금도 안 올렸는데(소액이긴 하지만 올렸는데도 계속 안 올렸다고 표현한다) 이런 거 정도는 세입자가 그냥 좀 하면 안 되냐는 내용이었다. 정황상 우리가 고마워야 할 입장이라 할지라도 보증금은 보증금이고 수리비는 수리비 아닐까. 또한 같은 말이라도 좀 듣기 좋게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부동산 직원의 전언이기에 실제 집주인의 말투나 표현이 어땠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지극이 집주인 편인 부동산 직원은 분명 집주인의 마음을 가득 담아 나에게 전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