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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Jan 23. 2020

우연히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History는 'Our story'가 아닌 'His story' 다

길을 가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눈이 어느 지점에 멈춰 설 때가 있다. 시각의 주인인 마음을 따라 멈추는 것이다. 마치 훈련이 잘된 반려견처럼 억지로 다른 곳으로 마음을 끌고 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엔 시선이 고정되는 이유를 안다. 이를테면 내 기준에 멋진 것을 봤을 때 그렇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이나 광고에서 본 멋진 자동차나. 놀라운 것이나 별로인 것에도 시선은 멈춘다. 한겨울에 반바지와 쓰레빠 차림인 학생을 볼 때 그렇고, 깨끗이 청소한 인도 어울리지 않게 가로수에 아무렇게나 버려둔 쓰레기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시선이 멈춘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오늘 아침 성경을 보다가 한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주여 내 젊은 날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함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편25:7) 왜 이 구절에서 마음이 멈춘 걸까. 두 번 세 번. 몇 번을 계속해서 읽었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며 암송했다. 암기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저 짧은 구절도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했다. 열 번쯤 되뇌었을까. 내 마음이 멈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흠 없는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나는 진즉 탈락이다. 볼 것도 없다. 양심상 따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대단한 죄를 지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누구를 죽인 적도 없고, 남의 재산을 가로챈 적도 없다. 패륜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거짓을 일삼으며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때리는 일도 없거니와 과속하지도 않는다. 세상 기준으로만 보면 나는 모범 시민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에 비추어 보면 다르다. 형제에게 화내거나 나쁜 말을 하는 것도 죄요,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 한다. 형제와 싸운 것이 몇 번이고 몰래 미워한 일이 몇 번이었던가. 혈기왕성한 청년의 때를 지나면서 성적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한 나는 거의 매일 부자가 될 방법만 궁리하곤 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말이다. 죄인도 이런 죄인이 없다.


과거로 돌아간대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게 분명하다. 앞으로도 그렇다. 행동은 절제할 수 있다. 담배도 끊었고 술도 끊었다. 하지만 어떤 일은 내 의지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마음이 그렇다. 티는 안내도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분노와 짜증.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다. 주어진 삶에 충분히 만족하면서도 비싸고 좋아 보이는 것에 마음이 간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선을 막을 도리가 없다.


설령 약간의 진전이 있대도 그 자리는 순식간에 교만함이 들어찬다. 마음으로 짓는 죄에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유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마지막 심판의 날. 삶과 죽음이 갈리는 그날에 나의 죄와 허물이 용서받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행위로 그것을 덮는 게 아닌 그저 잊혀지는 것뿐이다.

    

다행히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니 모양은 좀 빠지지만 죄 문제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부디 저의 죄를 잊어주소서”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내 마음을 붙잡은 성경 구절은 다시 한번 나에게 상기시켰다. 구원은 내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별로 길지 않은 문장임에도 구원을 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네 번이나 나온다. ‘주여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함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History는 의심의 여지  없이 His story, 즉 하나님의 이야기다. 결코 My story와 Your story가 합쳐진 Our story가 아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하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의 관점으로, 나의 지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 나는 땅을 딛고 일어섰는가, 거꾸로 매달렸는가.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은 커다란 푸른 행성에 비스듬히 매달려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의 관점이 아닌 우주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동서남북 어디쯤 붙어 있는지도 정확히 말할 수가 없다. 2차원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3차원을 설명할 수는 없으니.


성경을 읽다 보면 마음을 사로잡는 구절을 종종 만난다. 그중 몇 개는 내 수첩에, 핸드폰에 저장되어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곤 한다. 분명한 것은 내 관점으로 성경을 읽을 때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읽을 때 내 발걸음 더 가벼워진다. 나의 노력과 수고로 하나씩 쌓아가는 인생이 아닌,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와 자비에 머무는 인생이 된다.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 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뀐다. 노력하여 얻어낸 것이 아닌,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한 하루가 펼쳐진다. 그리고 감사드려야 할 대상을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주의 섭리도, 끌어당김의 법칙도 아니다. 인과율도 아니다. 나도, 너도 아니다. 하나이신 분, 하나님이다. History가 그분의 이야기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역사에 잠시 발을 담근 존재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크리스챤의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우연히 시선이 머물렀던 바로 그곳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안치형 / 브런치 작가

[출간]

2019.6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


[브런치]

2020.01 [말근수필] 매거진

2019.03 [궁극의 행복 나로 살아가기] 매거진

2019.05 [일상의 기록] 매거진

2019.11 [나를 둘러싼 모든 숨들] 브런치북

2018.12 [50가지 시선의 차이]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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