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치형 Jul 17. 2020

다시 찾은 나의 아버지

장마가 그친 후 어느 산에서

아버지와의 즐거운 한

추억에도 색이 있다면 나의 유년 시절은 짙은 초록색 아니면 파란색이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딘가의 산이 떠오르고, 또 어딘가의 냇가가 떠오르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내 곁엔 항상 아버지가 계셨다.


빈 깡통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주시던 아버지. 두툼한 손으로 꼬물거리는 작은 구더기를 낚싯바늘에 조심스레 끼워서 건네주시던 아버지. 반도를 들고 서 있으면 저 멀리서부터 두 손 두 발로 첨벙첨벙하며 물고기를 몰아오시던 아버지. 코끝이 새빨개질 정도로 시린 겨울이면 나무를 베어 손수 썰매를 만들어 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추억에도 아버지의 얼굴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아버지를 올려다보기엔 내 키가 너무 작아서였을까.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궁금해서 얼굴을 볼 겨를이 없어서였을까. 아무튼 나의 유년 시절 추억 속에는 어떤 이미지로든 아버지가 계셨다. 항상 나와 함께 계셨고 나를 도와주셨고 나를 챙겨주셨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가깝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건 대학생 때부터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 내 추억은 유년 시절과 사뭇 다르다. 더는 푸릇푸릇하지 않다. 옅은 회색이거나 짙은 회색이다. 담배 연기처럼.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단지 고민이 많았다. 무언가를 이뤄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술 담배가 늘었다. 고민을 풀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망치고 싶어서. 딱히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참 많은 이들과 어울렸다. 마시고. 피우고. 마시고. 또 피우고. 오늘의 고민을 잊어버리고 밤늦게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한동안 나의 추억은 짙은 회색이었다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보시던 아버지. 어느덧 아버지보다 키가 커버린 나는 아버지의 그런 눈빛이 싫었다. 그래서 툭하면 반항했다. 솔직히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른다. 막연히 안 좋게 여기실 거라 생각했을 뿐. 나는 자랑스러운 아들과 거리가 멀었으니까.


비겁했다.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를 끌어들였다. 내게 가장 잘해주신 아버지를. 가장 친절하신 아버지를. 쌓인 화를 아버지에게 쏟아부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가며. 아버지는 가만히 들어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부모에게 감사한 건 없니?” 그리고 아무 말씀 없으셨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친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했다. 아버지께 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란 걸 보여드리려 노력했다. 성과도 따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더 거만해졌다. 아버지가 모르는 세계를 알려 드릴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그럴 때도 아버지는 가만히 들어 주셨다.



다시 찾은 아버지

결혼하고 나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다짐했다. 훗날 이 아이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릴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짙은 초록색이나 파란색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빈 페트병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주었다. 작은 구더기를 낚싯바늘에 조심스레 끼워 건네주었다. 첨벙첨벙하며 물고기를 몰아줬고, 눈이 오면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를 끌어줬다. 아이와의 추억 쌓기가 지상 최대 명령인 것처럼 있는 힘을 다했다. 회사를 나오면서까지.


그래도 아버지가 내게 주신 추억의 반의반도 아들에게 채워주지 못하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아버지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신 적이 없다. 손수 만들어 주신 장난감을 망가뜨렸을 때도, 물고기를 잘 잡지 못했을 때도. 뭘 할지 몰라서 방황했을 때도. 아버지는 내가 한 발짝 나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셨을 뿐이다. 조용히 바라보고 계셨을 뿐이다.


“네가 막내구나. 네 아버지가 네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나를 볼 때마다 저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어느 회사에 다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내를 어디서 만났고, 아이는 몇 살인지, 요즘은 무슨 일을 하는지. 심지어 내 책도 다들 읽어 보셨다. 내가 간신히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아버지는 친구분들에게 자랑하고 다니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요즘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의 아들, 우리 삼부자는 들로 산으로, 강으로 자주 놀러 다닌다. 함께 물고기를 잡고, 밭을 가꾸고, 매미를 잡는다. 아들은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뭐든 들어주시고 만들어 주시니 좋아할 수밖에. 할아버지의 손짓 하나 발짓 하나 놓치지 않으려 바쁘게 눈을 굴리는 아들의 모습에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보였다.


그런 아들을 쳐다보는 아버지. 잘 떠오르지 않았던 유년 시절의 아버지 얼굴이 이제 생각났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맛비가 그친 후 한껏 싱그러워진 어느 산속에서. 나는 찾았다. 나와 늘 함께였고, 나를 사랑했고,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던 아버지를.



안치형 / 브런치 작가

매거진의 이전글 25년 된 순두부집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