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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Jan 21. 2022

내일 그만둔다

식은 친구들을 놀라게 한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 식 또한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에 이끌려서 본능적으로 그랬다는 것 이외에는 해줄 수 있는 변명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머리 뒤에서 들린 총소리도 있긴 하지만 사냥을 처음 한다는 식이 누구보다 총을 잘 쏜 것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식은 다른 친구들과 그중에서도 특별히 선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 


둘은 어떤 날은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를 함께 거닐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그저 한 없이 평범하게 숲길을 산책했다. 모든 것을 능숙하게 하는 선을 식은 동경했다. 메타에서 모든 것을 경험해 본 사람처럼 느껴졌다. 선은 외향적인 성격에 누구나 빨리 친해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망설임 없이 도와주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식에게도 베푸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단 둘이 만나는 시간이 잦아지고 길어졌다. 선이 처음 식을 발견했을 때, 그에 대한 어떤 궁금증이 생겼다. 식의 촌스러움, 어설픔, 서투름과 같은 결점에 의문이 생기다가도 그것이 순수하고 수더분한 매력으로 느껴졌다. 가끔씩 본능적으로 드러나는 민첩함과 재능이 아마도 그 의문을 매력으로 바꾸어 놓은 것도 같다. 


식은 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는 몇 살 인지도 모른 채 끌렸다. 그것은 선 또한 마찬가지였다. 메타에서 외모로 보이는 성별이나 나이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은 식도, 선도 알고 있었다. 식은 선이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매일 상상했다. 


둘이 함께 스키를 타러 가기로 한날, 식이 현실의 선이라고 확신하는 위층 사람을 대면했다. 그 위층 사람이 식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음에도, 식은 그 위층 사람에게서 선에게 느끼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식은 절대로 잘못 올 수 없는 택배 핑계를 대며 모른 채 한 것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도 식은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선이 현실에서 노인이라면? 남자라면? 심지어 사람이 아니면이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다면? 등을 생각해보았지만 메타의 선과 연결 짓는 것에는 실패했다. 식에게 있어서 선은 메타에서만 존재했다.


선이 스키장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타자고 먼저 올라가고 식의 화면이 흐려진 때가 식이 메타로 온 지 딱 한 달 지난 시점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메타에 대한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다. 메타에는 현실에서는 평생 일해도 절대로 갖지 못할 넓고 좋은 집과 언제나 완벽한 날씨와 환경, 새로 사귄 친구들 그중에도 선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식 또한 다른 M-서울의 시민들처럼 빨리 캡슐로 이주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캡슐로 이주해서 더 진짜처럼 메타를 느끼고 싶었다. 


식은 1분가량의 광고를 다 보고 나서야 선을 따라서 슬로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바로 안 올라오길래 현실에서 잠들어 버린 줄 알았어.”

“미안, 그건 아니고, 오늘 무료 체험이 끝나서 광고를 보고 오느라 늦었어.”

식은 곤란한 표정으로 사과하며 이야기했다.   


“선, 너는 멤버십 가입한 거야?”

“나? 나는 오래전에 가입했지. 나도 초반 몇 달은 광고를 보면서 참아보려 했는데, 여기서 직장도 구하고 주로 메타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광고가 있으면 일도 할 수 없고, 맥이 끊겨서.”

“나도 빨리 여기에 직장을 구해보려고. 그때 말한 그 건은 잘 해결된 거야?”

“아 그거? 결국 그 고객이 포기하고 메타로 이주하는 걸로 이야기가 됐어. 나도 할 만큼 해보았는데 이번은 어쩔 수가 없더라. 너무 고집이 세셔서...”


선은 불쾌했던 기억을 떠올리듯 미간에 잠시 주름이 잡혔다가 이내 다시 웃는 표정을 하면서 이야기했다. 

선은 메타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주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메타에 적응할 수 있게 도움 주는 역할이었다.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과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 애착이 있어 버리고 올 수 없는 사람들, 현실에 부모님이 남아 있는 사람들 등등 각각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다. 식과 선이 말한 ‘이번 건’은 현실에 아버지 한 분만 남아계신 고객이 의뢰한 건이었다. 자식들과 모든 가족은 모두 메타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혼자서 외로운 한이 있어도 관짝처럼 생긴 저런 곳(캡슐)에는 죽기 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의뢰한 고객은 아들이 되는 사람이었고, 딸도 한 명 더 있었다. 딸과 아들이 캡슐에 들어가고도 몇 번이나 깨어나서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고 선 또한 캡슐의 신뢰성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아버지는 죽어도 이 땅에서 죽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아들과 딸이 포기하고 일 년에 한두 번씩 현실로 돌아와 아버지를 찾아뵙기로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너는 할 만큼 했으니까 된 거지.”

식이 선을 위로했다.

“그건 그렇고 아직 매칭 된 곳이 없어? 보통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데 혹시 확인 못한 거 아니야?”

“연락이 오긴 했어. 무슨 버그 사냥하는 알파 테스트라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몰라서 일단 그냥 내버려두었어. 신도시 건설한다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데 말이야.”

식의 사냥 이력을 보고 AI 헤드헌터가 매칭해 준 것이다. 


“내가 보니까 너는 신경이 좋아서 메타에서 사냥하고 신체 활동하는 일이 잘 맞을 것 같아. 너도 재미있어하잖아 한번 해보는 것은 어때? 그러면 멤버십도 가입하고 메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 메타에서 수입이 생기면 캡슐로 이주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와 잠을 자기 위해 셀로 돌아온 식은 침대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일도 예외 없이 하루의 반을 써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해야만 했다. 식이 희망하는 신도시 건설 관련업은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신도시가 생길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지금 직장은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었다. 먼저 연락이 온 알파 테스터 자리는 메타의 직장 치고는 그렇게 높은 금액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식이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 원한다면 내일부터 라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식은 내일 출근해서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겠다 마음을 먹고 새벽 늦게서야 잠들었다.  


Photo by Sean Polloc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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