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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Dec 29. 2021

바람개비 목걸이의 여자

식의 눈은 자연스레 그 여자의 목으로 갔다. 그 여자 목의 바람개비 목걸이는 모양만 바람개비인 듯 앞으로도 움직일 일은 없어 보였다.


“누.. 누구세요?”

바람개비 목걸이를 한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눈은 약간 충혈되어있었다.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문을 두드렸던 건 식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화를 내려고 올라왔지만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방금 전 자신과 스키 타러 가려던 그 사람이 맞냐고 묻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설사,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식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같은 목걸이를 한 사람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그 여자는 자신과 똑같이 손 뻗으면 벽이 닿는 공간, 셀에 사는 독신자 중 한명일뿐이었다. 식이 그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식은 메타 속의 자신이 더 좋았다. 닿을 수 없는 지평선이 보이는 무한한 공간 속에서 마음먹으면 하늘도 날 수 있는 아바타를 자아라고 느꼈다.


“저.. 803번 셀 사는 사람인데요. 혹시”


식은 둘러댈 말을 생각했다. 바람개비 목걸이를 한 여자가 자신의 정체를 몰랐으면 했다.


“잘못 배달된 택배 없었나요?”

“택배요? 903호로 입력하셨어요? 그런 거 없었는데요.”


식의 말을 들은 순간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얼굴이 보일 정도만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식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803번 셀로 돌아갔다.  


식은 전자레인지에서 식어가고 있던 저녁을 한 숟갈 입에 넣고는 다시 헤드셋을 썼다. 어둡던 주변은 순식간에 밝아지고 다시 지평선이 보였다.


식의 눈앞에서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식은 안도했다. 자신이 최근 들어 호감을 느끼던 사람이 좀 전의 일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담판을 짓고 왔어?”

“어? 응, 메타에서 무슨 댄서라나 뭐라나 하여튼 다시 한번 그러면 셀 입주자 분쟁 센터에 신고한다고 말했어.”

“그래 잘했어, 네가 간사이에 나는 밑에 층에 사는 사람이 뭐 택배가 잘못 오지 않았냐고 그러는 거야. 진짜 요즘은 이상한 놈들 천지라니까.”

“맞아. 빨리 메타로 옮겨야지”


메타에서 사람들이 다투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타에서는 괴로울 일이 없었다. 피곤함, 배고픔, 고통과 같은 감각들은 현실로 돌아올 때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현실은 점점 생리현상을 해소시켜주는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학습효과에 의해 사람들은 메타가 이상향과 가깝다고 느꼈다. 정부는 M-서울이 수년간 성공적이자, 추가적으로 신도시 건설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식이 최근에 지원한 곳도 메타 신도시 설계를 담당하는 회사였다.


“나는 다음 달에 캡슐로 옮길까 하고 있어”

“캡슐? 너 그렇게 돈이 많아? 부럽다.”

“그런 건 아니고, 메타에서 일하면서 할부로 내려고”


캡슐은 관처럼 생긴 일종의 생명 유지 장치였다. 옷을 입지 않은 채로 들어가서 누우면 장기 수면에 들어가고 생명유지 장치는 혈액에 직접 영양소를 공급해주고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등 사용자가 최소한의 에너지로 살아있게끔 해주었다. 메타에 접속하기 위해 뇌에 직접 연결하는 칩을 이식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헤드셋을 쓰는 과정과 비교하면 진정한 메타로의 이주였다. 지하철 건너편에 앉은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그런 실수는 없었다.


메타 초기에 부자들 중 몸이 불편한 일부가 이런 식으로 메타로 이주했다. 이후 기술에 대한 확신이 퍼지자 유지할 돈이 있는 사람은 전부 캡슐을 이용해 메타로 이주했다. 아무나 캡슐을 구매할 수 없는 것이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감당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 중 일부는 메타에서 일을 하며 할부로 캡슐 비용과 유지비용을 갚아 나갔다.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종종 중간에 다시 셀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대단한 부자가 아니어도 캡슐로 들어가는 경우는 85세 이상 노인이었다. 노인 중에도 치매나 중증질환 진단을 받으면 최우선 순위로 캡슐 이주가 가능했다. 더 이상 스스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식사나 간단한 생활조차도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캡슐 이주를 보장했다.


셀에서 캡슐로 옮겨간다는 말에 식은 부럽기도 그 용기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이제 스키 타러 가볼까?”

“그래 좋아!”


“스키장 매표소 앞에서 만나자”

“알겠어”


그 말을 하곤 바람개비 목걸이를 한 그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식도 도착지를 스키장 매표소로 입력하고 이동비용을 결제했다. 눈앞에 흐려지더니 멀리 보이던 설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로 바뀌었다. 더 가까운 곳에는 매표소가 있었다. 메타의 스키장이라고 해서 무료는 아니었다. 현실의 스키장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하지만 입장료가 있었다. 현실의 스키장과 똑같이 개발,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기업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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