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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Dec 30. 2021

어쩌면 사람들이 즐기는 건 공포일 지도 몰라

“식, 여기는 현실의 스키장 하고는 다르게 리프트를 탈 필요가 없어”

식이라는 이름은 메타에서 식의 이름이었다.


“어? 응 당연히 그렇겠지”

식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다른 게 하나 더 있는데 여기서는 하드코어 모드와 세이프 모드가 있어. 뭐냐면 하드코어 모드는 현실에서 처럼 스키를 타다가 다치면 너의 아바타도 다치는 거야. 이건 칩이 이식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고통도 느끼고 만약에라도 아바타가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게돼. 현실의 몸이 죽었다고 착각하게 되거든.”


“뭐? 죽는다고? 메타에서 죽고 싶은 사람도 있어? 캡슐에 들어간 사람들은 영원히 살고 싶어서 거기 들어간 거 아니야?”


식의 말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캡슐은 혈액에 공급하는 화합물을 통해 인간의 신체가 노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캡슐에 있는 동안 인간은 늙지 않았다. 캡슐에 들어간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영생을 원한 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건 맞아, 그런데 웃기는 게 영원히 살게 해 줬더니 재미가 없었나 봐. 사람들이 이런 스포츠를 즐기는 게 진짜 타는 게 재미있어서라고 생각해? 아니야 사람들이 진짜 즐기는 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일 수도 있어.”


식은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설명을 듣기도 전에 세이프 모드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난 그냥 세이프 모드로 할래”

“그래? 알겠어. 스키장은 내가 가자고 했으니까 내가 지불할게”

바람개비의 그는 허공에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드코어 모드를 선택했다.


식에게 스키와 스키장 이용권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식이 스키를 선택해보자 스키가 발에 신겨졌다. 식은 조금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곧바로 바람개비의 그도 스키를 신었다.


“그럼 정상으로 가보자 어차피 세이프 모드니까 넘어져도 아프지 않을 거야. 이제 정상까지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을 거야. 가보자.”

“응 여기 보인다.”

식은 허공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식의 알림은 식의 눈에만 보였다. 둘은 정상으로 이동했다. 정상으로 올라가자 화려하게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메타에서 의복은 보온과 보호의 기능은 사라지고 지위, 과시 자기표현과 같은 의미만 남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식은 바람개비의 그를 따라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식은 분명히 현실에서 스키를 탔던 것처럼 방향 전환을 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넘어졌다. 정상의 가파른 부분에서 넘어져 눈을 뒤집어썼다. 메타의 식이 넘어진 사이 현실의 식은 스키 타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메타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현실에서 움직인 것이다. 메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식이 쓰고 있는 헤드셋은 단순히 눈앞에 메타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인식해서 메타의 아바타가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었다. 현실의 몸과 1:1로 대응하게 움직이는 것이 맞긴 하지만 요령이 생기면 현실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아바타를 움직일 수 있었다.


바람개비의 그는 뒤에 있던 식이 굴러 떨어지며 자신보다 앞에 있는 것을 보곤 깔깔대며 웃었다.

“다들 처음엔 그래, 그래도 다칠 염려 없으니까 마음껏 넘어지면서 배워봐.”


식은 서투르게 몇 번 다시 넘어지더니 감을 잡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처음 스키를 탈 때처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한 번씩 자신감이 생기면 과감한 시도도 했다. 식은 현실에서도 겁 없이 시도하는 편이었지만 넘어져도 아무런 아픔이 없다는 것에 더 과감하고 빠르게 배워갔다.


첫 번째 탈 때는 몇 번씩 넘어지면서 서투르게 타더니, 두 번째에는 능숙하게 내려가는 바람개비의 그를 따라갈 만큼 제법 능숙하게 방향 전환을 하며 내려갔다. 세 번째로 탈 때는 현실에서보다 더 잘 탈 수 있을 만큼 능숙해졌다. 바람개비의 그는 마지막에 내려오는 그를 보며 감탄했다.


“원래 현실에서 스키 잘 타지?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배울 수가 없어.”

“현실에서? 그렇게 잘 타지는 않는데 대부분의 운동은 빨리 배우는 편이야”

“네가 보통 사람들보다 신경이 좋은가 봐. 메타에서는 너처럼 신경이 좋은 사람이 유리해 신체적인 한계가 없으니까 말이야”


식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은 좋았지만 키가 큰 것도 아니고, 힘이 센 편도 아니라 대부분의 운동을 특출 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 스키처럼 신체조건의 영향이 크지 않고 도구를 이용하는 운동은 잘하는 편이었다.


“와, 메타에서는 몇 번을 타도 지치질 않네. 지치기 전에 질려서 그만 탈 거 같은데?”

“맞아 현실에서는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만 타고 그랬지 생각난다”

“그럼 우리 마지막을 한번 더 타고 다른 거 하러 가자”

“그래 그러자”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식도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보이던 설산의 풍경이 사라지고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검은색 화면에 안내문구가 보였다.


식님, 메타 멤버십 무료 체험 기간 동안 즐거우셨나요?

저희도 식님을 메타에서 뵙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밑에는 멤버십 가입  버튼과 광고와 함께 메타 즐기기 버튼이 있었다. 메타는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지만 민간 IT 기업이 투자를 하고 건설에 참여했기 때문에 수십 년간 운영권을 쥐고 있었다. 메타 자체는 무료였지만 광고를 보지 않는 자유는 무료는 아니었다. 식은 과연 광고와 함께 즐기는  가능할  의문했지만 광고와 함께 메타 즐기기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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