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룡적: 폭발적이고 강렬하다-는 뜻의 신조어.
네가 다니는 대학교가 한국 최고니? 그건 아니지 않니?
너와 연을 끊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웃으며 축하해 달라고 강요하지 마.
직접 들은 말을 글로 써보았다. 개인적으로 당시에 이 말을 들었던 충격보다 글을 쓰면서 받은 충격이 더할 나위 없었다. 말보다 글이 폭룡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더없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으로 내 머리와 가슴을 둥둥 둔탁하게 때린다.
시청각 미디어에 비해 글을 쓰고, 글을 볼 때는 자극이 둔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게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억울하거나 상처받은 일을 친구에게 알리기 위해 메신저를 보낼 때면 그 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활자로 쓰인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 논리를 볼 때마다 흠칫 놀라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무엇이든 발언할 수 있다. 내 이름을, 내 얼굴을 보이기 꺼려질 때는 익명 뒤에 숨어서라도 발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윤리를 따져야 한다.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접하며 감각은 점차 둔해진다. 경각심을 가지자, 예민함을 가지자는 표어는 어딘가에서 닳도록 들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사람들은 그럴 여력이 없어 보인다. 여유도 없고, 체력도 없다. 이 논의는 인터넷이 발달된 시점에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음에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정보의 전달 또한 마찬가지다. 감정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은 사실 유무와 상관없이 산발적으로 전파된다. 나 또한 정보 전달자 중 한 명이다. 여태껏 거짓말을 퍼다 나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의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을 친구들에게 전달하기도 하니 말이다. 애석하기 그지없다.
글을 쓸 때는 객관화가 되는 동시에 주관화가 된다.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고 무슨 발언을 한 것인지, 상대방의 기저에는 어떤 태도가 깔려있는지 분석과 해석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조합된 활자는 그 어떤 것보다 가히 '폭룡적'이다. 친구들과 메신저를 하며 억울함과 서러움, 분노와 실망감을 토로할 때, 내가 보냈던 메시지를 5분 안에 영구적으로 지우게 되는 이유는 분명 나름대로 검열했음에도 날 것 그대로의 감각과 감정이 그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적어 내리며 당시의 상황이 다시금 선명하게 되짚어져 더욱 힘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들 또한 이를 느낀 것인지 적잖은 감정 소모가 이루어졌다. 강도와 여운은 다를지 언정, 감정은 그렇게 전달된다.
쓰고, 옮겨 적고, 전달할 때 활자가 모여 만들어내는 폭룡적인 영향력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글을 끼고 사는 삶인 만큼 아마 평생 이 감각을 곱씹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