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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Dec 15. 2023

예약하셨나요?

우연히 발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걷는 걸 좋아한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편한 신발과 복장을 하고 집 밖을 나선다. 퇴근 후 저녁이라면 집안일을 얼추 마친 후 아내의 눈치를 슬쩍 보며 집 근처를 산책한다. 처음에는 집 근처 한강 산책로 쪽으로 나오지만 그때그때 걷는 코스를 달리한다. 그러다 보면 이 동네에서 10여 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여러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주말도 비슷하다. 주중보다는 좀 더 여유가 있으니 집 근처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걷는 것 외에는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이곳저곳을 아무런 목적 없이 걸어 다닌다. 그러다 흥미로운 '발견'을 한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좀 더 알고 싶은 용기가 생기면 발견한 장소로 들어가 탐험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곳들은 대부분 소소한 곳이다. 내 삶의 패턴과 겹치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아 아쉽게도 자주 가 보지는 못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우리 동네의 작은 독립서점. 아파트 큰 길가를 건너 바로 이면도로에 있는 450년도 넘은 보호수인 은행나무. 남산공원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남산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합정역 근처의 유명한 우동집인 교다이야 근처에서 정말이지 우연히 발견한 양화진 역사공원. 그리고 기타 등등. 이 과정에서 내가 한 거라고는 특별한 목적 없이 그 주위를 계속 걸었다는 것. 또, 그 과정에서 내 흥미를 끄는 뭔가를 발견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한 번씩 좀 더 용기 내서 그곳에 들어갔다는 것. 이게 다였다.


 이런 곳들을 사전에 알아서, 찾아가는 게 가능할까? 아마도 내게는 아주 어려운 일일 듯한데,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를 모르니 애초에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검색은 애당초 내가 뭘 모르는 지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거다.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데 모르는 것을 어떻게 검색할까. 둘째는 우연히 발견하더라도 경험으로 이어지기까지 생각보다 다소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별생각 없이 불쑥 들어가고 과감하게 행동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자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춤할 때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그런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늘고 있어 조금 부끄러울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연히 발견하고 용기까지 내 문을 열더라도 '예약'하지 않으면 입구에서 막히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거다. 아마 코로나 발생 이후인 것 같은데 어디를 가더라도 사전 예약이 돼 있지 않으면 입구 컷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에서 주말을, 특히 가족이 함께 소소하지만 새로운 주말 일상을 보내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새로운 장소뿐 아니라 평소에 찾아가는 곳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이 동네 마실 가듯 가던 장소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국립민속박물관 내 어린이박물관이다. 이곳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문을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와이프와 나는 현대미술관의 멤버십이 아까워서라도 별생각 없이 산책하듯 현대미술을 즐겼(?)다. 하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인 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 우리 딸을 달래러 가는 곳이 바로 어린이박물관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부터는 하루 전체 방문객과 시간당 방문객 수에 대한 제한과 사전(온라인과 현장) 예약이 생기더니, 급기야 어느 순간부터 현장 예약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몇 달 간격으로 전시 콘텐트가 바뀌기에 우연히 찾더라도 딸에게는 늘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근데 몇 년 전부터 사전에 어떤 전시가 있는지 확인한 후 우리가 방문할 날짜에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져 갔다. 사전 확인과 예약은 점점 우리에게 심리적인 허들이 돼 가고 있었고 그렇게 이곳은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나와 딸이 좋아하는 떡만둣국을 와이프가 차려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오늘 어디 가볼까. 와이프가 웃으며 얘기한다. 어디 갈지 알아봤어? 이 양반이 아직도 이렇게 모르네? 어디 갈려면 미리 알아보고 예약해야지, 그냥 뚝딱 얘기하면 갈 수 있을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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