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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Mar 08. 2024

우리 모두는 결국 늙는다 (1)

 딸이 점점 커가며 인간의 모습을 갖추다 보니 같이 할 수 있는 게 점점 많아진다. 물론 나이가 더 들면 그걸 부모가 아닌 친구들과 하는 순간이 올 테지만 뭐, 그건 그때 일이니 지금은 생각지 말자. 가령 아주 대중적인 놀이 중 하나인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가 그러한 예 중 하나다. 딸이 4-5세쯤 됐을 무렵인가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는 언감생심, 그저 뽀로로 장편영화 보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다. 어두운 곳에서 1시간 이상을 가만히 있는다는 게 그 나이에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깨닫곤 했다. 그런 딸이 나름 초등학교 높은 학년으로 올라갈 나이가 되니 슬슬 사회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영화만 잘 고르면 거의 2시간 가까이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팝콘과 함께 나름 즐기고 있는 걸 보면 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에 영화가 추가됐고, 최근 우린 ‘웡카(Wonka)’를 봤다. 꽃같은 티모시가 처음부터 노래를 부른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 보다도 훨씬 밝으면서도 동화 같은 전개에 딸은 지루한 틈이 없어 보였다. 어두운 이야기가 나올라하면 디즈니 스타일의 노래가 중간중간에 나와 마치 ‘워워, 심각해지지 마. 우린 그런 영화 아냐’라면서 딸을 다독여 주는 듯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이어졌고, 그 순간 드디어 ‘그’가 나왔다. 바로 ‘움파룸파’가.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에서 움파룸파를 잠깐 보고 혹시 휴 그랜트? 이랬다. 그 휴 그랜트가 삼등신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시원하게 불러 제꼈다. 웃긴 노래를. 그것도 웃긴 율동으로.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영화관 안에서. 휴 그랜트의 멋진, 아니 정말 꽃 같은 젊은 시절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딸은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나이 든 아저씨 한 명이 난쟁이 역할을 하며 재미난 노래와 우스운 춤을 추는 걸로만 이해할 뿐이었다. 영화 중간에 한번, 영화 끝나고 다시 한번 그렇게 아내와 난 ‘움파룸파 (Oompa Loompa)’ 노래와 춤에 매료됐고, 모두 즐겁게 영화 한 편을 즐겼다.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이었다. 노래 들으면서 밥 먹자는 우리 딸의 요청에 멜론을 켜며 핸드폰을 건넸다. 딸은 ‘웡카’의 OST를 검색해 열어 ‘움파룸파’ 노래를 틀면서 말했다. “움파룸파 아저씨 노래 너무 웃겨”. 세상에나, 휴 그랜트가 우리 딸에게는 그저 ‘움파룸파 아저씨’고, 재밌게 생긴 아저씨가 재미난 춤을 추며 재미난 노래를 부른 사람일 뿐이라니. 그러면서 요즘 학교 가면 남자애들이 움파룸파 아저씨 춤 따라 하면서 논다며 유튜브 영상도 찾아서 보여준다. 그러며 노래에 맞춰 재미난 표정과 몸짓으로 춤을 따라 하며 까르르 웃는다. 덩달아 나 역시 일어나 따라 하며 우리 모두 한 바탕 웃었다.


 아내와 나는 휴 그랜트에 대한 이 놀라운 조합과 인식에 ‘와!’ 하며 놀라워하며 나이 듦과 외모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티모시 살라메(윌리 웡카 역)도 이런 날이 오겠지? 젊디 젊은 시절 놀라운 꽃미남을 자랑했던 휴 그랜트도 나이 드니 우리 딸에겐 그냥 나이 든 아저씨로구나.”


아내와 나는 동시대의 또 다른 배우들을 예시로 이런 얘기를 두런두런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인간의 외모라는 게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의 점을 향해 수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얘기를 나눴다.


“소싯적 아무리 예쁘고 잘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비슷해지는 것 같네. 결국은 비슷비슷한 아저씨, 아줌마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딸과 함께 영화 한 편 보며 재미있게 놀았을 뿐인데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덤으로 얻었다. 이럴 때 보면 딸도 성장하지만 나 또한 딸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것 같다. 딸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을테지만 딸과 놀면서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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