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싸라 Feb 23. 2024

놀이로 딸과의 추억 만들기

'훌라', 도구는 간단하나 전략적인 카드게임

 밖에 나가 거닐 때 맨손으로 다니면 참 편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정말 필요한 물건만 챙겨 나가려고 한다. 심지어 출근할 때조차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가방도 잘 메지 않는다. 노트북과 필기구 등을 꼭 챙겨야 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둘러메고 나간다. 하지만 평소에는 핸드폰, 지갑, 회사 출입카드, 이어폰 그리고 책 한 권이 다다. 그러니 겨울에는 책만 손에 들고 나머지는 외투에 다 넣거나, 여름에는 에코백에 싹 다 넣고 어깨에 메고 나가는 게 일쑤다. 책을 안 갖고 나갈 때는 지갑과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냥 빈손으로 털레털레 걸어간다.


 이런 성향이 놀 때도 적용된다. 재밌는 놀이라 할지라도 이것저것 챙겨야 되거나 잔뜩 뭔가를 깔아야 된다면 시작부터 좀 부담스럽다. "어, 이건 내 스타일이 아냐"라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한두 번이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꾸준히 즐기기는 좀 꺼려진다. 나에게는 놀이 중 하나인 '운동' 역시 그러했다. 그러다 보니 유산소 운동도 중간 단계가 더 많은 수영보다는 달리기가 더 잘 맞았고, 무산소 운동 역시 무게가 필요한 역기 운동보다는 바(bar)만 있으면 되는 턱걸이에 훨씬 더 끌렸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몇 박이든 내 짐은 참 단출했다. 지금이야 아내의 오랜 권유(?)로 20리터짜리 캐리어에 짐을 넣고 다니지만, 그전에는 양 어깨에 메는 그 조그만 가방에 넣으면 그냥 땡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나한테는 그게 더 잘 맞았다. 운동도 생활도 그랬지만, 노는 거 역시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에 더 끌렸다.


 우리 딸이 커가며 마(魔)의 6살을 지나 7살이 됐을 무렵 난 문득 딸이 부쩍 컸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가져왔던 딸과의 놀이를 하나 실현하고 싶었다. 내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카드게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훌라'다. 카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엄청 간단하지만 생각은 많이 해야 되는 전략적인 게임이다. 준비는 간단하다. 아마 지금도 각자의 가정 구석 어딘가에 있음직한 트럼프 카드가 도구의 전부다. 카드를 무작위로 잘 섞어 참여자에게 7장씩 나눠주고 나머지는 중앙에 엎어 둔다. 갖고 있는 카드를 룰에 따라 '등록'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카드를 모두 바닥에 놓으면 이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보드게임 중 '루미큐브'가 거의 비슷한 룰과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긴 하다. 하나 루비큐브의 경우, 큐브를 세워야 되는 장치를 앞에 두고, 엄청난 수의 큐브를 앞에다 깔아야 한다. 내겐 준비 과정이 너무 복잡했다. 그랬기에 그저 손에 딱 들어오는 카드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훌라'를 난 사랑 했다.


 이 게임을 7살이 된 우리 딸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딸의 눈높이에 맞춰 아주 차근차근 그리고 딸의 실력에 맞춰 겨우겨우 이기거나 지는 스킬을 발휘해 끈기 있게 오랫동안 가르쳤다. 그렇게 딸은 차츰차츰 규칙에 익숙해져 갔고, 한 번씩 계단식으로 실력이 상승해 갔다. 뭐든지 잘해야 재밌는 법 아닌가. 딸 역시 이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실력이 늘고 있다는 걸 느낀 것 같다. 늘고 있으니 더 재밌어진 거다. 그러다 보니 자기 바로 직전 딸은 심심치 않게 우리만의 암호를 외쳤다. "아빠, 자기 전에 (훌라) 한 판, (원카드) 한 판 어때?" 그렇게 우리는 자기 전 한 판 한 판을 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1년 정도가 흘렀을 때쯤 난 느꼈다. 이젠 진심으로 플레이해야 겨우 이길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다. 그 이후로는 이젠 더 이상 가짜로 플레이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딸에게 바로 져 버리니깐. 난 진심으로 이기기 위해 몰입했다.   


 점점 커가는 딸은 점차 다양한 놀이를 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만큼 이제는 훌라를 하진 않는다. 시간 장소에 따라 우리가 같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그만큼 더 늘어가고 있기도 하고 딸의 취향이 훌라보다는 원카드를 더 선호하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젠 뭐 충분하다. 언제 어디서든 간단하게 카드만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놀이가 하나 생겼으니 말이다. 딸은 점점 커간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더 길어질 거다. 그런 딸이 언젠가는 자기 친구들과 어딘가로 놀러도 갈 거다. 아마 그때 같이 간 친구 중 하나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트럼프 카드를 꺼내 놀자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때 딸이 아빠와 하던 훌라를 떠올렸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아빠랑 같이 즐긴 훌라를 가르쳐주며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적당한 놀이 시간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