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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노마드 Jul 19. 2015

'피로사회'를 곱씹다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를 느지막이 읽고 든 생각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는 출간된 지 3년 정도 지난 책이다. 당시에 책을 요약한 글들을 읽고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동안 저자의 생각과 책에 대한 요약 기사들을 자주 보고 듣다 보니 짧은 분량임에도 직접 읽어볼 마음은 그다지 생기지 않았었다.


다행히 최근에 한병철 교수의 책 몇 권을 소장할 기회가 생겨 피로사회를 가장 먼저 확보하고 드디어 일독을 마쳤다. 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은,

“새롭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

우선, 새롭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모습을 타자와의 갈등이 아닌, 성과주체가 자신을 착취하는 모습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내용에 따라서는 그저 새로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기존의 관점과 뚜렷한 대척점에 서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주장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오늘날 나를 포함해 개개인이 처해 있는 현실 그리고 개인들이 모여 추동하는 작금의 사회를 예리하게 설명해 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본문의 내용은 나 같은 일반인이 100%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철학자의 글이라 난해하고 비비 꼬인 논리들이 책을 읽는 도중에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 핵심적인 메시지는 자못 분명해 보인다.

자본주의가 더욱 세련되게 진화하면서

‘규율사회’로부터 ‘성과사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진화한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긍정에 뿌리박은 성과주체가 되어

과거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인은 스스로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메시지들을 떠올려 조합해보면 이 정도일 것 같다.


하지만 책에는 이 외에도 참신한 고민거리를 주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책의 시작 부분에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병리학적으로 해석하고, 우울증을 개인의 증상만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현상으로 풀어내는 설명도 곱씹어볼 만했다. 시간적 여유의 필요성과 성찰적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책의 흐름에서는 상당히 무게감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또한, 개인과 집단의 과도한 성과 추구를 빗대어 ‘도핑사회’라고 표현한 것도 흥미로웠다.


물론, 저자가 견지하는 성과사회의 관점이 오늘날의 모든 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과 노동을 둘러싼 전통적인 형태의 갈등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면 더 복잡해지고 심각해진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피로사회는 일독의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질성과 갈등 관점의 기존 프레임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진화한 자본주의의 기만적인 본바탕을 통찰력 있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짧은 책이지만 그만큼 짧은 시간에 독파하고 덮어버릴 수가 없는 책이라는 점. 줄을 긋게 되는 문장들도 여럿이고,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따로 사색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도리어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책 한 권 붙들고 사유할 만한 여유, 이해 안 가는 내용을 계속해서 곱씹어 보는 정도의 비효율, ‘돌이켜’ 생각해보고자 무위(無爲) 혹은 심심함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구도심(求道心). 저자는 이런 모습들이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주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라 여기는 것 같다.


어쨌거나 바쁜 현대사회를 살면서 마음 속 어딘가 허전한 사람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주저리주저리 생각을 정리했지만, 무엇보다 본문의 문장 그대로를 종종 다시 찾고 싶은 마음에 내 감상은 그만 쓰고 본문의 몇몇 내용을 발췌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기억하고픈 본문 내용들


# 푸코가 말하는 규율사회 vs.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사회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그럼에도 규율사회와 성과사회가 공유하는 것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 성과주체의 자기 관계는 한 마디로 역설적 자유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 무언가를 부정할 수 있는 힘이 소멸된 문제 상황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 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돌이켜 생각하기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성과사회의 과실은.. 피로사회

활동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도핑은 말하자면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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