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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이 Jun 03. 2022

24주차 달이랑 비엔나들이 - 시작하며

임신 기간 중엔 어느 순간에라도 갑작스런 불안과 걱정이 밀려들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이벤트도 생길 수 있다는 걸 중기에 접어들면서 더 느끼고 있다. 20주 무렵부터 임신 소양증같은 두드러기가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중심으로 울긋불긋 피어오르더니 양 무릎, 오른쪽 팔꿈치와 위쪽 팔에 오백원 동전크기만하게 퍼져나갔다. 가려우면 긁지 말고 아이스팩을 대거나 시원한 물로 진정시켜야 하는 걸 잘 알지만 못참고 벅벅 긁어서 더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의사선생님께 처방을 받아 연고를 바르니 조금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아무튼 매 순간이 완전히 ‘안정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안정기’라고 불리는 중기 20주 전후로 태교여행을 많이 가는 것 같다. 태교를 위한 여행이라 써놓았지만 사실은 출산과 육아 후 당분간은 꿈도 꾸지 못할 곳으로 오랜만에 훌쩍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마침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격리 요건도 완화되기 시작한데다가 운 좋게도 친구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큰 마음을 먹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하여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코시국에 결혼식을 올리는 바람에 회사에서 주는 기나긴 경조휴가도 못 쓰고 강원도로 신혼여행을 갔었던지라 남편과 어떻게든 같이 가고싶었지만 남편은 일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었다. 워낙 장거리 비행이기도 하고, 여행가면 많이 걸어다니고 신체적으로도 피곤할텐데 게다가 커다란 여행가방도 끌어야하고… 과연 동행하는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달이와 무사히 여행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마지막까지 망설였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대신 가기 전에 나름대로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했다. 임신기간 중 한 번은 처방받아 살 수 있다는 압박스타킹을 5천원 정도로 저렴하게 구매해두었고, 비행기 안에서 최대한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비즈니스석은 아니지만 추가 비용을 내고 앞쪽에 레그룸 넓은 좌석으로 자리를 지정했다 (어디가 그래도 제일 편한 자리인지 seat guru에서 열심히 찾아봤다!) 옷은 헐렁한 임부복 원피스를 입었고 허리 부분이 넓고 쭉쭉 늘어나는 잠옷 바지도 챙겼다. 가방도 무조건 가벼운 걸 골랐고 최소한의 짐만 챙겼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면세점을 싹쓸이해오고 싶었지만 무겁기도 하고 또 환승을 하는 독일이란 나라가 수하물에 워낙 엄격하다고 해서 액체류는 빼고 가벼운 모자 하나와 헤어 브러쉬, 달이가 태어나면 필요할 쪽쪽이 두개, 체인, 홀더만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이렇게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몇 년 만에 유럽행 장거리 비행기에 탑승했다.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졸기도 하다가 두 시간에 한번씩 맨 뒤까지 한 바퀴 걷고 스트레칭도 하며 열세시간을 보냈다. 프랑크푸르트 궁항엔 무사히 도착했는데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는 시간이 짧아 걱정되었다. 항공기가 만석일정도로 사람이 많았기도 했고, 우리 비행기 말고 비슷하게 도착한 다른 비행기 승객들도 몰려들텐데 빠르게 뛰지도 못하겠고… 공항에서 출국심사 할때처럼 임산부/교통약자 패스트트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환승객들도 다시 보안검색과 핸드캐리 수하물 검색대를 통과해야하는데, 전자파나 엑스레이가 걱정되어 “아이 엠 프레그넌트”라고 임산부임을 알려 검색대 말고 직원의 수검색을 요청했다. 지나치게 임산부 중심적인 사고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는 보건소 임산부 뱃지의 국제 공용 버전이 있다가나 아니면 잘 보이는 곳에 임산부 스티커 같은 걸 붙일 수 있도록 해도 좋을 것 같다.


다행히 착륙 후 환승 비행기 터미널까지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고, 제 시간에 오스트리아항공 비엔나행 항공기에 안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달이의 태동이 살짝씩 느껴질때마다 ‘달아, 비행기 소음이 좀 시끄럽지? 조금만 참자, 거의 다 왔어’라고 달이도 내 자신도 안심시켰다. 그렇게 인천부터 프랑크푸르트까지 약 13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비엔나까지 약 1시간 15분의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달이와 나는 비엔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임산부 #24주차 #태교여행 #오스트리아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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