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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K May 24. 2021

불완전하고 서투른 시간을 기록한다는 것

   10대의 나는 20살을, 20살이 된 나는 28살을 갈망했다. 나에 대한 무지와 그 무지로 인해  쏟아져버린 구슬들처럼 어지러이 놓여있던 선택권들. 길이 있을지 조차 모른 채, 나름의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내가 왜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은 쏟아진 구슬들 사이로 길 없이 무한히 헤매어가는 시간이었다.  갈망하던 28살에 나는 3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결혼 10년 차, 아이 셋의 엄마인 지금, 많은 답을 찾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구슬들은 많이 줄었다. 그건 확실하다.


   아무래도 나는 영리한 편은 아니고 미련한 편이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해내는 것도 참 서툴고 느리다. 학창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손이 느린 덕에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끝내는 간단한 미술 과제도 늘 집에서 밤을 새워해가야 했다. 딱히 특출 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내 기준에서라도 '완성'된 결과물이라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마음이 편했다. 나는 그렇게 느린 데다 고집도 센 아이였다.


   글도 그림과 비슷한 것이다.  글은 내가 내놓고 싶을 때까지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 그것이 내게 말보다 글이 편한 이유다. 그것이 나를 덜 고통스럽게 한다. 게다가 말할 때의 나는 여기저기서 보아온 처세술과 대화법을 이용해 얼기설기 짜만든 사람처럼 느껴진다. 글 쓸 때의 나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아닐 테지만 이 쪽이 더 고유한 나, 실제의 나에 가깝게 편하게 느껴진다. 삶의 대부분을 내향적으로, 많은 관계없는 방향으로 살아내온 나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호작용보다 스스로에게의 집중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말이다.

   

   아무튼 글을 쓰는 것 역시 완전한 즐거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의 이토록 서툰 나를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장문의 글을 썼다가 지워버렸었는지. 내보내지 못하고 남기지 못하고 보내버린 글들을 모두 모아 책으로 엮는다면 제법 두툼한 책 한 권은 나올 거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나는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해온 나를 더 사랑하고 안아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지 못해 온 지난한 시간 속에서 나는 타인들과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가장 가까운 이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글을 시작한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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