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K Jun 02. 2021

프로방스 풍의 테이블 매트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온 큰 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는 매트 안 깔아? 무슨 매트? 식탁에 까는 매트 말야. 아, 테이블 매트. 맞아, 그거. 우리 집에도 있기는 한데 유행이 아마 지났을 거야. 그래도, 우리도 그거 깔면 안 돼? 가만, 테이블 매트를 어디다 뒀더라.. 


신혼의 단꿈을 꾸던 시절, 테이블 매트는 내게 꼭 사야 하는 물건 중 하나였다. 가까운 마트에 가서 가장 예뻐 보이는 디자인을 골랐다. 아주 고급스러운 것은 못 사고 적당히 저렴하면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샀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물건들은 대개 유행과 함께 쉽게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내 취향이라는 것도 사실 다수의 취향을 거스를 만큼 비범한 것도 아니어서, 그 테이블 매트들도 다수에게 사랑받던 영광의 시간이 모두 지나버린 후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버렸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으로 새 테이블 매트를 검색해본다. 참 예쁜 디자인도, 색깔도 많이 나와 있다. 재질도 인조가죽이며 실리콘이며 여러 가지가 있다.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고 평은 어떻고 배송은 어떻고 재고 재다가 역시 난 온라인으로 뭘 사는 데에는 소질이 없구나, 결론짓고 침대에 휴대폰을 던져버리고선 몸도 같이 던진다.     


누워서 곰곰 생각해본다. 큰 아이가 내게 그 질문을 하기까지 어떤 사고의 과정이 있었을까. 나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 우리 집과 사뭇 다른 느낌의 친구의 잘 정돈된 아파트를 떠올린다. 그 모습이 부러워 부단히 애도 몇 번 써봤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나는 정리하는 데에는 도통 소질이 없다. 나의 소질에 대한 두 번째 자체 결론이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데도 어느 순간부터 정리가 안 되다 보니 꾸미지도 않게 된다. 집도 나도.     


꽤 유명인들 중에서도 정리를 지독하게 못하는 사람들 참 많은데 하고 스스로 위로해보려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혹은, 엄마여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질문들이 불쑥 올라와 다시 속상하다. 엄마가 뭐라고. 큰 아이 입장에서는, 혹시 엄마에게 상처되지는 않을까 얼마나 고르고 골라 한 말이었을까. 그래도 그 질문 뒤에 내가 읽어내 버리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늘 모두 지나친 상상력 탓이다.     


다음 날 아침밥을 차리려 작은 프라이팬을 꺼내는데 싱크대 한쪽 구석에 그 오래된 테이블 매트가 눈에 띄었다. 매일 같이 열고 닫는 장인데도 그렇게 어느 날 눈에 띈다. 꺼내보니 지난 세월을 매트 위에 적어놓은 것처럼 군데군데 오랜 얼룩이 있을뿐더러 구부정하게 오랜 시간 세워져 있었던 탓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한쪽 구석만 붕 뜬 모습으로, 역시 영 멋이 없다.      


언젠가 내가 이 테이블 매트를 무척 사랑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각종 허브의 이름과 세밀화가 그려져 있는 앞면과, 레이스와 꽃무늬가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뒷면. 양면으로 쓸 수 있어 나름 실용적이라며, 참 잘 고르지 않았냐며, 뿌듯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자랑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면 공대 출신인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그런 데에는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 그러네 하고 꼭 호응을 해줬다. 기억이라는 게 참 희한해서 그런 간단한 대화를 떠올려보기만 해도 그때 우리가 어떤 감정을 주고받았는지도 생생히 떠올라 설레게 만들고 만다.     


그때의 나는 참 새침하고, 세상이 모두 내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남편과 주변 사람들이 내게 주는 사랑을 당연하게 소비하던 그런 풋풋하고 조금은 오만한 20대 새내기 주부였다. 거기서 조금 멀어졌을 때에는 그런 모습과 생각들이 어설프고 어리석게 느껴졌었는데, 또 거기서 더 멀어지고 나니 그때의 생각과 모습들이 마냥 예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많은 가능성을 쥐고서 나에게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던 그때, 그 시절은 정말 찬란했다. 그래서 20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만히 마음이 충전이 되는 구석이 있다. 그 테이블 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 역시 스스로는 모른 채 누군가에게 배터리 같은 역할을 했을 20대의 내가 있어 반가웠다.     


문득,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보인다. 함께 이런 스타일의 테이블 매트를 깔았던 다른 엄마들은 지금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얀 원목 식탁과 레이스 커튼, 파벽돌과 꽃무늬, 2000년대 아파트 속 프로방스를 꿈꾸던 주부 블로거들. 애써 하나하나 나무를 재단해 벽에 붙이고 직접 가구를 칠하던 그 열정적인 엄마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서 그 블로그를 찾아가 봤다.     


블로그 속 집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파벽돌은 템파보드로, 각진 원목 의자는 라탄 의자로, 스텐실이나 티슈 공예 같은 것들은 요즘 유행하는 원목 도마 공예나 마크라메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톤이라든지 그 특유의 편안함이라든지 예전의 내 기억 속 프로방스 풍의 집과 그대로인 구석들이 있고, 그 블로거의 열정도 여전하다는 사실에 왠지 웃음이 났고, 왠지 고마웠다. 그러고 나선 우리 집을 가만 둘러보니, 정리는 예전에 비해 엉망이긴 해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으로 블로그들을 드나들던 그때와 다름없는 열정으로 나름 열심히 꾸며놓은 구석들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나도 다 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인 구석들이 있었다.



우리 집 아침밥은 간단한 토스트와 과일로 가볍게 차리기 때문에 대개 예쁜 색색의 플라스틱 접시를 쓰는데, 그날 아침에는 유리 접시를 꺼냈다. 물 가득 채운 컵 하나, 간단한 아침식사를 올려놓은 유리접시는 방정맞게 휘어버린 테이블 매트를 티 안 나게 잘 눌러주어서 눈 비비고 나온 큰 아이를 기쁘게 해 주었다. 나에게는 지나가버린 유행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유행이기에, 아이들은 매트를 기쁘게 이리저리 보며 각자 마음에 드는 면을 골라서 다시 깔아놓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촌스럽다거나 하는 표정은 없었다.     


며칠간 밥 먹을 때마다 매트를 놓고 썼더니 휘었던 부분은 감쪽같이 펴지고, 오래된 얼룩도 조금씩 지워져 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있던 것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다시 만나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에 스며들어 온다. 괜히 가슴을 건드려 이렇게 긴 글도 쓰게 만든다. 이제 이 매트에는 신혼부부의 기억뿐 아니라 큰 아이와 그 친구, 다섯 명인 우리 가족의 기억도 스며들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이 매트가 다시 우리 테이블에서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다시 꺼내어 만나는 이 다음번에는 겹겹의 패스츄리 같은 기억들이 나를 기쁘게 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마지막 신혼 가구. 수제 테이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