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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K May 24. 2021

5월의 캠핑 - 해자연 캠핑장

<아빠 미안해, 우리 캠핑가> 엄마와 삼남매의 캠핑이야기.


지난 화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집을 치우고 짐을 챙겨서 막내 어린이집이 끝나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남양주에 있는 해자연 캠핑장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생활이 답답해 최대한 다른 이와의 접촉이 없는 여행, 캠핑을 나 역시 작년부터 시작했다.



아빠 없이

삼남매와 엄마, 넷이서 떠나는 캠핑


아이들의 아빠는 매년 일요일과 신정, 구정, 추석에만 쉰다. 늘 토요일 밤에 출발해야 하는데 숙박비도 아까울뿐더러 시간도 촉박해 어딘가에서 1박 하는 여행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았다.


캠핑은 초기 투자 비용을 제외하면 숙박비는 저렴하니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 날 때마다 떠나보기로 했다. 아빠는 서운하다고 말하지만, 당신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그렇게 말해두고 떠난다. 그게 작년 8월부터의 일이다.


트램펄린으로 향하는 길. 제법 가파른 길인데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아이들은 아마 이 길을 10번도 넘게 오르락 내리락 했을 거다.

놀러 온거니 일하러 온거니.
이 사이트의 외로운 노동자.


노동자가 한 명인 캠핑은 최대한 품을 줄여야 한다. 흙이 묻어 털어야 하는 것, 망치로 팩 박는 것은 정말 하기 싫어서 허리띠를 졸라 루프탑 텐트를 샀다. 타프 치는 것은 혼자 할 자신이 없어 나무 그늘 자리로 가거나 정 안되면 파라솔을 친다. 먹을거리는 집에서 모두 손질해가서 캠핑장에서 설거지 거리를 최대한 줄인다. 쓸데없는 액세서리는 모두 사절이다.


그렇게 품을 줄이고 줄여도 캠핑장에 가기 전부터 집에 올 때까지 거의 쉴 틈이 없다. 먹을거리 장을 보고, 짐을 싸고, 짐을 싣고 내리고,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밥하고 설거지, 아이들을 챙기고 자기 전 영화 세팅까지 모두 내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캠핑 횟수가 쌓일수록 아이들이 도와주는 일들이 많아져 이번에는 한결 수월했다. 고사리 손들로 짐을 옮기고 의자를 펴서 세워놓고 조그마한 티피 텐트도 알아서 척척 세운다.


큰 아이의 진두지휘로 캠핑장을 돌아다니며 놀 거리를 찾는다. 그러고선 셋이서 어디선가 실컷 놀다가 두 뺨은 빨개지고 머리 위에서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나는 상태로 돌아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의 모습 중에 하나다. 어린이로서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지켜보는 마음이 고맙고 기특하다.



밥은 최대한 간단히.
오늘의 메뉴는..

그동안 나는 저녁밥을 해본다. 요즘 그리들이 유행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나로서는 구이바다가 가장 편하다. 라면부터 고기까지 안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새우볶음밥과 찹스테이크다. 냉동하여 소분되어 있는 볶음밥 3봉지를 터서 볶고 나눠 담은 다음, 찹스테이크 밀키트를 꺼내서 또 조리한다. 금세 근사한 저녁이 차려진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노을을 보며 시작한 저녁 식사는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계속 된다.


누런 노을이 붉어졌다 파래지고 파란 빛도 거의 산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칫솔과 치약을 들고 세안을 하러 간다. 개운한 마음으로 다시 우리 텐트집으로 돌아와 북적대며 모두 옷을 갈아입고 나면 무비 타임이다. 그럼 아이들은 영화에 빠져들고 나는 잠시 책을 읽다 잠이든다.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모두 저절로 눈을 뜬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온갖 이름 모를 새소리들, 저 아래 마을에서 울려퍼지는 닭 울음소리들도 우리를 깨우지만 오늘 하루 뭘하며 놀까 자면서도 생각했는지 다들 벌떡 일어난다. 일어나기 싫다고 고집 부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해자연 캠핑장.
여기가 단연코 방방장 뷰맛집.


아이들은 오늘의 새 옷을 말끔히 갈아입고 다시 트램펄린으로 향한다.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 본 방방장은 지금까지 본 캠핑장의 방방장 중에 단연 최고였다. 크기도 클 뿐더러, 그 앞으로 겹겹이 색을 달리하며 놓여져 있는 산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이 고도에서 아침빛, 노을빛 맞아가며 뛰면서 땀에 젖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큰 아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언덕을 올라가는 데 지쳤는지 혼자 남아 어제 잠들어 못 본 영화를 시청한다. 큰 아이가 손수 친 텐트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더 즐거운 마음이 든다.


아침은 곤드레밥과 야채 순대 볶음이다. 곤드레밥을 질색 팔색하던 아이들도 매콤한 순대와 한입씩 먹어보더니 술술 입 안으로 잘도 넘긴다. 입가심으로 집에서 썰어간 스테비아 토마토와 오렌지를 두어개씩 먹더니 다시 비탈길을 뛰어올라가 방방장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은 있다.
나만의 시간도.


엄마 아빠들은 텐트치고 밥하느라 사이트를 떠나는 일이 별로 없는데, 아이들은 벌써 방방장에서 캠핑장 모든 친구들을 만나서 우리도 다음에는 이걸 먹어보자는 둥, 저런 텐트도 있더라, 우리도 저런 텐트 쳐보면 어떻냐는 둥, 나보다 최신 정보에 더 빠삭해져서 돌아온다.


영화 감상을 마친 큰 아이까지 위로 올려보내고 혼자서 믹스커피 한 봉 뜯어 보온병에 넣고 마구 흔들어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본다. 커피 한잔과 함께 잠시 얼마 전에 독서동아리 찬스로 구매한 양희은의 수필집 <그러라 그래>를 읽는다. 글쓴이와 제목과 표지를 보고 기대했던 그대로의 내용이 나를 아침부터 웃게도 하고 글썽이게도 만든다.



숨어있던 보석같은 계곡을 찾아낸 아이들.
엄마보다 너네가 더 낫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방장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계곡에 놀러가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계곡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하고 물으니 어떤 아주머니가 전화를 바꿔 받았다. 아이를 데리고 계곡에 가려는 참인데 언니가 너무 재밌게 놀아줘서 함께 갔으면 한단다. 잠시 데리고 갔다 와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에고, 저야 너무 감사하죠!하고 전화를 끊고서 몇페이지 더 넘기다 아무래도 가봐야할 것 같아 주인 아주머니께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아이들은 잘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니었더라면 영영 몰랐을 지도 모를 캠핑장 옆의 보석 같은 계곡이었다.


돌멩이 옆 올챙이를 찾아 관찰하고 댐을 만들며 노는 아이들. 올때마다 나는 뭐하고 놀까 고민하는데 아이들은 항상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낸다. 캠핑장에 와서 나에게 심심하다고 짜증을 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심지어 방방장도 놀이터도 없는 캠핑장을 가도 마찬가지다. 돌이라도 쌓고 나뭇잎이라도 짓이기면서 논다.



점심은 여기에서.
오남 저수지, 그리고 카페 자스민.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 나는 철수하러 사이트로 향하고 아이들은 다시 방방장으로 향한다. 날이 덥지도 춥지도 않아 짐도 별로 없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차에 태우고 캠핑장 오는 길에 봐두었던 저수지로 향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오면서도 깜짝 놀라서 이름을 몇번이고 중얼거리며 외워뒀다. '오남저수지' 오남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나오는 카페에 들어갔다. 자스민이라는 이름과 어울리게 온통 보랏빛인 카페다.

호수 바로 위쪽에 위치한 카페라서 경치가 호사스럽다 느껴질만큼 아름다웠다. 카페 데크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아래 잘 가꿔진 산책로가 있다. 평소 이런 산책로 걷기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이 생각나 다음에 서울에 오시거든 꼭 함께 걷자고 약속을 해두었다.


점심을 때워볼 생각으로 아이들에게는 고르곤졸라 피자와 허니브래드, 사과쥬스를 시켜주고 나는 호수라떼를 시켰다. 아래에서부터 호수처럼 푸른색, 하얀색, 갈색,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올라가 있는, 보는 맛도 있는 라떼다. 아이스크림을 탐낸 막내가 휘휘 저어버린 탓에 사진에는 다 못 담았지만 보기만큼 맛도 좋았다.


카페 데크에는 흔들 그네도 있어서, 아이들은 먹자마자 달려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바쁘다. 비눗방울만 불어와도 행복하다. 혼자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호수라떼를 마시며 책을 마저 읽는 나도 행복하다. 우리에게 어제 오늘을 선물하기 위해 요 며칠 계속 흐렸나보다.



꽃 향기 가득한 산책로.
우리 참 잘 놀았다!


카페 주차장 옆에 산책로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어서 산책로도 잠깐 내려갔다 왔다. 전망대처럼 툭 튀어나온 곳에서 오남저수지의 파란빛이 서라운드로 펼쳐진다. 양 옆에는 아카시아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수수한 향기가  기분 좋게 가슴을 가득 채워준다.


아침부터 방방장에 계곡에 또 방방장에 카페에 와서도 쉴새없이 놀았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피곤에서 비롯된 둘째의 짜증이 시작됐다. "그럼 업혀!" 쿨하게 동생을 들쳐 업은 큰 아이는 씩씩하게 주차장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거의 매일 이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매일 몸도 마음도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놀랍고 감사하다.



자, 이제 집에 가자!
안돼!!


집에 가자는 한마디에 막내가 자지러진다. "집에는 절대 안가!" 이쯤되면 이 아이들이 철인이 아닌가 의심해본다. 피곤해서 벌써 터덜터덜하면서도 집에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 아직 해가 중천인데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엄마가 모를리 없다."그럴 줄 알고 한군데 더 예약해뒀지!" 미리 예약해둔 승마장으로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한다. "엄~마~" 능글맞은 표정을 하고 막내가 나를 웃으며 째려본다. 고작 다섯살이 저런 표정은 어떻게 짓는걸까?


새로운 목적지로 출발과 동시에 유예된 귀가에 안심한 막내부터 한명씩 차례대로 잠이 든다. 결국 큰 아이가 혼자 말을 타고 동생 둘은 자면서 집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박 2일이 드디어 끝났다. 다음에는 또 어디서 뭘하고 놀까? 궁리를 하며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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